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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봐, 여기 구멍이 더 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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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스포츠클라이밍' 하면 김자인을 떠올린다. 스포츠클라이밍이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도 첫 정식종목으로 도입됐다. 김자인이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김자인과 스포츠 팬들의 꿈이다. 김자인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웃었다.
김자인이 도전하는 종목은 콤바인이다. 스피드, 리드, 볼더링 3종목으로 구성된 콤바인은 출전 선수중 6명이 결선에 진출해 3종목 순위를 곱한 숫자로 순위를 가린다. 2009년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에서 첫 정상에 오른 김자인은 지난 10년간 리드, 볼더링 종목에서 세계 정상을 지켜왔다. 월드컵 최다우승(26회), 아시아선수권 11연패 역사를 썼다. 문제는 스피드 종목이다. 김자인은 지난 1월 처음으로 본격적인 스피드 종목 훈련을 시작했다. 김자인은 "15m를 빠른 속도로 뛰어올라가 초를 다투는 스피드와 15m 암벽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이 올라가야 하는 리드의 차이는 100m 스프린트 종목과 마라톤만큼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쓰는 근육도, 경기 방식도, 마인트컨트롤 방법도 전혀 다르다. 김자인은 "리드, 볼더링에서 평정심을 잘 유지한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런데 스피드는 긴장감의 종류가 다르다. 리드는 초반에 긴장해도 등반하면서 숨을 고르면서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다. 스피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고 실수없이 내달려야한다. 마치 경주마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26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콤바인 초대 챔피언이 결정된다. 결전의 날을 2주 남짓 남기고 김자인은 자신의 부족한 종목을 직시하고 있다. 스피드 종목 기록 단축을 위해 이날도 홀로 스피드 전용 훈련장을 찾았다. 휴식시간도 없이 로프에 매달렸다. 콤바인 종목 전략은 확실하다. "순위를 곱하는 콤바인 랭킹 산정 방식에 따라 3종목 중 1종목에서 1위를 하면 메달권에 들 확률은 80~90%다. 주종목인 리드에서 일단 우승하고, 스피드에서 최대한 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며 이를 악물었다. "노나카 미호와 노구치 아키요등 일본 선수들이 볼더링에서 강하다. 스피드는 저와 비슷하고 볼더링, 리드에서 엄청 잘한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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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의 최근 컨디션은 나무랄 데 없다. 7월 열린 2018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1-2차 대회에서 연속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오스트리아 등 유럽선수들이 1-2위를 기록했다. 아시안게임 직전 실전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메달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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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중앙119 구조대에서 일하는 소방공무원 오영환씨와 결혼한 '새댁' 김자인에게 가족은 가장 큰 힘이다.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느라 집에 가지는 못하지만 태릉이 집에서 멀지 않아서 훈련후 남편이 오기도 하고, 그나마 남편과 얼굴을 볼 수 있다"면서 "서른살이 되고 결혼을 한 후 마음의 안정이 생겼다. 어릴 때는 운동하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털어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마인드컨트롤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함께 스포츠클라이밍의 길을 걸어온 친정식구들도 든든하다. 삼남매 중 큰오빠 김자하씨는 '라이벌' 중국대표팀 코치로, 작은오빠 김자비씨는 KBS해설위원으로 여동생의 첫 아시안게임을 함께 한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아시안게임을 향한 '암벽여제'의 각오는 결연했다. "2014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을 때의 마음을 생각한다. 우승을 못한다 해도, 내가 실수를 해서 꼴찌를 한다 해도, 그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후회없이 훈련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마음과 각오도 똑같다.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후회없이 준비하는 것이 목표"라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독하니까요. 해내야죠."
반달눈웃음의 독종, 김자인이 다시 로프를 잡더니 저 높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