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우상 장미란 넘었다' 박혜정, '韓선수 최초' 세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 '3관왕'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23-09-17 12:36


'우상 장미란 넘었다' 박혜정, '韓선수 최초' 세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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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제2의 장미란' 박혜정(20·고양시청)이 두번째 세계선수권에서 '우상' 장미란을 뛰어넘었다.

박혜정이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여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 3개를 한꺼번에 수확하는 역사를 썼다. 박혜정은 17일(한국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2023년 세계역도선수권 여자 87㎏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24㎏, 용상 165㎏, 합계 289㎏을 들어 3개 부문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과 달리 세계역도선수권에서는 인상, 용상, 합계에 모두 메달이 걸렸다. 박혜정은 3개 부문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역도가 세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에서 우승한 건, 2021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대회 손영희(30·부산시체육회) 이후 2년 만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최강' 중국이 출전하지 않았다. 손영희는 2021년에 인상에서는 2위에 머물렀고, 용상과 합계에서 금메달 2개를 땄다. 하지만 박혜정은 이 체급 3개 부문 세계 기록(인상 148㎏, 용상 187㎏, 합계 335㎏)을 보유한 '도쿄 올림픽 챔피언' 리원원(중국)이 나선 대회에서 인상, 용상, 합계 모두 1위를 차지하는 최초의 역사를 만들었다.

장미란도 못한 쾌거다. 장미란 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현역 시절 총 4차례(2005년 카타르 도하, 2006년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 2007년 태국 치앙마이, 2009년 한국 고양시) 세계 챔피언에 올랐으나, 이 기간에도 인상은 1위 자리를 다른 선수에게 내준 바 있다.

이날 박혜정은 인상 1차 시기서 120㎏에 성공했다. 이어진 2차 시기에서 124㎏을 들어 2위를 확보했다. 박혜정은 마지막 3차 시기서 131㎏을 신청했다. 하지만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리원원이 1, 2차 시기에서 130㎏에 연거푸 실패하더니 더는 플랫폼 위에 서지 않고 기권했다. 리원원의 기권으로 생애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예약한 박혜정은 131㎏에 도전하지 않고 포기했다. 함께 출전한 손영희는 인상에서 122㎏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어진 용상 경기에 나선 박혜정은 1차 시기서 158㎏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실패했다. 그러나 2차 시기서 158㎏을 들어올린 박혜정은 여세를 몰아 3차 시기서 165㎏를 들어올리는데 성공했다. 160㎏에 머문 마리 테이슨-래픈(미국)을 꺾고 또 한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혜정은 합계 289㎏으로 277㎏의 테이슨-래픈에 12㎏ 앞서며, 여유있게 금메달을 추가, 3관왕이 됐다. 손영희는 인상에서 122㎏으로 2위에 올랐지만, 용상에서 1차 157㎏에 실패한 뒤 2, 3차 시기를 포기해 합계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우상 장미란 넘었다' 박혜정, '韓선수 최초' 세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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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초등학생이었던 박혜정의 인생을 바꾼 것은 장미란의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영상이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박혜정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안산시 체육회에 찾아가 "역도를 하고싶다"고 말했다. 박혜정의 가능성을 본 안산시 체육회는 '역도 명문' 안산 선부중으로의 전학을 도왔다. 1m75-117㎏의 이상적인 체격에, 파워, 순발력을 두루 갖춘 박혜정은 타고난 역도 선수였다. 재기발랄한 감성에, 지독한 승부욕까지 갖춘 박혜정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한국 중학생 신기록(합계 259㎏), 주니어 신기록(290㎏)을 연거푸 작성하며 '포스트 장미란'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주니어 무대에서도 적수가 없었다. 박혜정은 지난해 5월 그리스 헤라클리온에서 벌인 세계주니어선수권(인상 120㎏, 용상 161㎏, 합계 281㎏)과 7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치른 아시아주니어선수권(인상 115㎏, 용상 155㎏, 합계 270㎏)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연령 제한에 묶여 시니어 대회에 나서지 못했던 박혜정은 지난해 4월 첫 시니어 대회였던 2022년 항저우아시안게임 역도 대표선발 평가전에 나서 우승을 거머쥐며 화려한 신고식을 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한 2022년에는 합계 274㎏(인상 119㎏·용상 155㎏)으로 8위에 그쳤다. 고교 2학년 때 합계 290㎏을 들었던 박혜정은 고교 3학년 목표를 '합계 300㎏'로 정했다. 하지만, 고교 3학년이던 지난해 그의 합계 최고 기록은 오히려 퇴보한 285㎏이었다.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다. 슬럼프로 이어졌다.

하지만 박혜정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올해 실업 생활을 시작한 박혜정은 5월에 열린 2023 진주아시아역도선수권 여자 87㎏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27㎏, 용상 168㎏, 합계 295㎏을 들어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당시 우승을 차지한 리원원의 합계 기록 315㎏(인상 140㎏·용상 175㎏)과 격차가 있었지만, 박혜정은 합계와 인상 2위, 용상 3위에 오르며 또 한 번 국제 경쟁력을 증명했다. 2020년 이후 합계 295㎏ 이상을 든 여자 선수는 리원원과 박혜정, 단 두 명뿐이다.

박혜정은 두 번째로 나선 세계선수권에서는 리원원을 제치고, 챔피언에 올랐다. 장미란도 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쓰며, 온전히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박혜정은 항저우아시안게임에도 나선다. 홈이점을 안고 있는 리원원의 존재감은 여전하지만, 세계 챔피언의 자존심으로 도전할 계획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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