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선생의 올림픽 이후 광복 전까지 활동 고찰한 논문 발표

기사입력 2025-10-02 13:19

(서울=연합뉴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에 선 손기정 선생.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고 있다. 2020.8.8 [귀거래사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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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도쿄 올림픽 취소가 육상 선수 은퇴 계기가 됐을 것이란 추론도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고(故) 손기정 선생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1945년 광복 전까지의 생애와 활동을 고찰한 논문이 나왔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최근 한국체육사학회지 제30권 제3호에 논문 '미디어로 재구성한 일제 말기 손기정의 생애(1936-1945)'를 발표했다.

논문에서 허 교수는 "1936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시기는 손기정이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교에 입학하고, 일본의 압력에 의해 마라톤 활동을 중단하고 사회인의 삶을 영위했다는 점에서 선수로서의 생명이 종료한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며 "그러나 육상인으로서의 활동이 베를린 올림픽 이후 광복에 이르는 기간 동안 결코 중단된 적 없었다는 점이 해당 시기의 미디어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고 밝혔다.

손기정 선생이 1940년 도쿄 올림픽 출장을 희망했다는 증거는 당시 미디어에서 찾았다.

1937년 1월 25일 일본 도쿄 아사히신문, 1937년 10월 14일 조선일보의 보도가 근거자료다.

아사히 신문은 아사히체육상 수상자의 기념 연설을 담았다. 보도에 따르면 손기정 선생은 "이 상을 고향으로 가져가 선생님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4년 후 도쿄 올림픽에서도 반드시 활약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서는 손기정 선생이 메이지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올림픽 마라톤 2연속 우승을 목표로 삼아 체계적인 훈련을 계속했다는 점, 1937년 11월에 열릴 예정인 메이지신궁경기대회에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할 예정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40년 열릴 예정이던 도쿄 올림픽은 전쟁 때문에 취소됐다.

허 교수는 "도쿄 올림픽의 불발은 손기정에게 마라톤을 계속 해야 할 이유와 목표의 소멸을 의미한다. 올림픽 개최 가능성이 사라진 마당에 1936년 베를린에서 세계 정상을 확인한 월드스타에게 일본이나 조선에서 벌어지는 국내 대회는 출전하고자 하는 의욕도, 기대해야 할 가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손기정 선생의 '선수 은퇴'의 결정적인 계기를 도쿄 올림픽 취소라고 추론했다.

이번 논문에서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이후 손기정 선생을 바라본 일본과 조선의 시각차와 식민지 스포츠 스타가 감내한 고통도 소개했다.

jiks79@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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