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티나(이탈리아)=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우리가 1호가 되지 않을까요?" 지난해 7월, 코리아휠체어믹스더블컬링리그에서 우승 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행 출전권을 획득한 이용석-백혜진조(이상 경기도장애인체육회)는 패기만만했다. 2024년 강릉세계선수권 챔피언조 '창원시청 부부 국대' 정태영-조민경조, '세계랭킹 1위 국가대표' 서울시청 정준호-김혜민조를 모두 꺾은 직후다. 국내 리그전, 월드클래스 라이벌들을 넘어선 이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믹스더블이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밀라노-코르티나에서 메달을 정조준했다. 두 사람의 성을 딴 '200%'라는 팀명을 소개하면서 "200%를 쏟아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고 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2010년 밴쿠버패럴림픽 은메달리스트 출신 박길우 감독.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사진제공=이영희 전 KADA 위원장(IPC 의무위원회 멤버)
#"2010년 밴쿠버에서 선수로서 첫 은메달을 땄다. 지도자로서 메달을 딴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이다." 백혜진-이용석조의 데이터와 '케미'를 본 후 삼고초려 끝에 지휘봉을 잡았다는 박길우 믹스더블 대표팀 감독은 '청출어람' 제자들과의 금빛 신화를 노래했다.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유치를 위해 '컬링 불모지' 대한민국에 휠체어컬링을 도입한 원주연세기독병원 이영희, 박주영 의대 교수가 만든 클럽팀에서 전용경기장도 없이 쉼없이 연구하고 도전한, 투혼의 '1세대'로 밴쿠버의 기적을 쓴 이후 16년이 다 되도록 후배들의 메달은 나오지 않았었다. 박 감독은 말했다. "2010년 첫 메달 후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번엔 꼭 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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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이탈리아 코르티나에서 대한민국 휠체어컬링, 메달의 약속이 지켜졌다. '밴쿠버 레전드' 박길우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휠체어컬링 믹스더블 이용석-백혜진조가 16년 만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팀200%' 이용석-백혜진조는 11일(한국시각) 이탈리아 코르티나 올림픽 컬링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믹스더블 결승에서 '강호' 중국 왕멍-양진차오조에 연장혈투 끝에 7대9로 석패했다.
휠체어컬링은 '원샷원킬'이다. 드로샷만 있을 뿐 스위핑이 없다. 2인조 경기는 스톤 수도 적다. 한번의 실수가 치명적이다. 양궁에서 화살이 과녁을 꿰뚫듯 드로샷의 정확성이 승부의 요체다.
자존심을 건 한중전, 경기 시작 전부터 "코리아 파이팅!" "짜요!" 응원이 번갈아 울려퍼지며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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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엔드 중국의 후공, 시작부터 치열한 수싸움이 이어졌다. 중국이 하우스 안에 빨간 스톤을 쌓았다. 이용석의 7번째 드로샷이 중국의 1번 스톤을 걷어내자, 중국 양진차오가 이 스톤을 다시 걷어냈다. 백혜진이 다시 1번 스톤을 잡아냈으나 왕멍이 이 스톤을 걷어내며 중국이 3점, 대량득점에 성공했다. 0-3.
2엔드 한국의 후공에서 1점을 따라붙었다. 3엔드 중국의 후공, 중국이 버튼 위 1번 스톤을 잡은 가운데 왕멍의 마지막 스톤이 하우스 안으로 빨려들며 2점을 가져갔다. 1-5.
4엔드 이용석의 6번째 드로샷이 중국의 1번 스톤을 쳐내고 하우스 안에 자리잡았다. 양진차오가 7번째 파워풀한 샷으로 한국의 1번 스톤을 밀어낸 후 환호했지만 다시 이용석이 테이크아웃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양진차오가 질세라 다시 테이크아웃, "짜요!" 응원이 흘러나왔다. 결국 해결사는 원샷원킬 백혜진. 마지막 스톤을 버튼 가장 가까이에 붙이며 1점을 챙겼다. 2-5.
5엔드 중국의 후공, 이용석의 3번째 드로샷이 예술이었다. 중국의 스톤을 밀어내고 1번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잇달아 가드를 세워 1번 스톤을 보호했다. 왕멍의 마지막 드로샷이 실패하며 1점 스틸에 성공했다. 3-5. 점수차를 좁혔다.
6엔드 다시 중국의 후공, 파워플레이로 승부를 걸었다. 다득점으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 짓겠다는 의지. 왕진차오의 여섯 번째 투구가 더블 테이크아웃에 성공했다. 이용석의 7번째 스톤이 하우스 안에 머물렀지만 양진차오가 이마저 쳐내며, 박스 안에 2개의 중국 스톤만 머무는 상황이 됐다. 백혜진의 더블 테이크아웃이 실패하며 하우스 안에 1개의 스톤이 남았다. 이어진 왕멍의 드로샷이 아슬아슬하게 하우스 안에 머물며 2점을 꿰찼다. 3-7. 다시 4점 차.
7엔드 한국의 후공, 파워플레이 승부수를 던졌다. 양진차오의 테이크아웃이 이용석의 1번 스톤을 밀어낸 후 나가버렸다. 이용석의 6번째 투구가 하우스 안에 자리잡았지만 7번째 투구 양진차오가 이를 걷어냈다. 8번째 이용석의 키샷, 중국의 빨간 스톤을 밀어내고 버튼 위에 올라섰다. 하우스안에 노란 스톤 3개가 남은 상황, 중국 왕멍의 마지막 샷이 버튼 위 노란스톤을 밀어내고 버튼 위에 멈춰섰다. '히트 앤드 스테이'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 백혜진의 강심장 드로샷이 중국의 빨간 스톤을 밀어내며 3점, 대량득점을 획득했다. 6-7. 1점 차로 따라붙었다.
마지막 운명의 8엔드, 중국의 후공에서 6개의 스톤이 남은 상황. 중국의 빨간 스톤 1개, 한국의 노란 스톤 2개가 버튼 위에 촘촘히 올라붙었다. 박길우 감독와 '팀200%'의 작전타임 후 이용석의 5번째 투구가 흔들렸다. 중국이 1번 스톤으로 올라섰다. 극세사 투구를 보여온 양진차오의 6번째 투구, 믿기 힘든 실투였다. 중국의 빨간 스톤이 하우스를 그냥 지나갔다. 7번째 이용석이 강력한 샷으로 중국의 1번 스톤을 밀어내고, 1번을 잡았다. 양진차오의 8번째 투구, 다시 1번을 차지했지만 백혜진의 마지막 투구가 중국 스톤을 밀어내고 기어이 1번을 잡았다. 마지막 초긴장한 왕멍의 투구가 약하게 흘렀다. 대한민국이 기적같은 스틸에 성공. 7-7. 연장에 돌입했다.
그러나 치열했던 9엔드, 일진일퇴의 수싸움 끝에 백혜진의 마지막 드로샷이 실패하며 중국에게 2점을 내줬다. 7대9 석패. 그러나 대한민국 휠체어 컬링의 힘을 전세계에 입증하기엔 충분했다.
사진제공=이영희 전 KADA 위원장(IPC 의무위원회 멤버)
백혜진은 의정부 동호인팀 '롤링스톤스'에서 첫 태극마크를 단 후 베이징패럴림픽, 4인조 컬링서 첫 메달에 도전했지만 6위에 그쳤다. '강심장' 빅샷, 키샷으로 위기 탈출을 이끌던 '원샷원킬 리더' 백혜진이 마침내 포디움의 꿈을 이뤘다. 이용석은 '해병대 972기'로 2014년 겨울 사고 후 2017년에 컬링을 시작해 8년 만에 패럴림픽 국가대표가 됐다. 지난해 서울시장애인체육회에서 경기도장애인체육회로 이적하면서 '혜진누나'와 믹스더블 첫 호흡을 맞췄고 깜짝 태극마크를 달더니 첫 패럴림픽에서 메달리스트의 기적까지 썼다. 청주서 중학교 때까지 도대표 축구선수로 활약할 만큼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녔다. 대회 기간 내내 "혜진누나가 정신적 지주다. 누나만 믿고 간다" "용석이가 드로샷을 정말 잘한다"며 서로를 칭찬하며 200%의 팀워크를 보여줬던 이용석-백혜진조가 초대 챔피언은 놓쳤지만 믹스더블 '1호' 메달 약속을 지켰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빛나는 투혼, 대한민국 응원석이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코르티나(이탈리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