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는 모든 경기인들과 팬들의 염원을 대표한다. 국가대표 차출은 자랑스러운 것이며 열심히 뛰어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오랜 기간 국가대표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을 때다. 그 헌신의 가치를 알기에 '국가대표 은퇴'란 이름의 명예로운 휴식을 줄 수 있다. 배구계에도 이런 선수가 한명있다.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 여오현(현대캐피탈)이다.
여오현은 지난해 6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이유는 2가지였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 2001년 아시아선수권부터 대표팀에 발탁돼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주전 자리를 지켜왔다. 시즌이 끝나면 국가대표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월드리그,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예선 등에 나섰다. 제대로 쉴 틈이 없었다. 여오현은 2012년 런던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후 "지금은 몸도 힘들고 마음도 아프다"면서 은퇴 의사를 전했다. 두번째는 후배들을 위해서였다. 12년간 여오현이 대표팀 주전으로 뛰는 동안 걸출한 리베로가 나오지 않았다. 여오현은 "후배들이 큰 경기 경험을 쌓아서 빨리 성장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두가 여오현의 선택을 존중했다. 박수를 치며 국가대표 은퇴를 지지했다.
하지만 단 한군데만 그러지 않았다. 바로 대한배구협회다. 협회는 9월4일부터 8일까지 일본 고마키에서 벌어지는 2014년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 아시아예선전 최종라운드에 참가할 대표팀에 여오현의 이름을 올렸다. 여오현은 4일 진천선수촌을 찾아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협회에서는 무단이탈이라며 무조건 합류를 외쳤다. 여오현은 소속팀 숙소로 돌아갔고 협회는 중징계를 내릴 태세다.
이번 사태에 대해 현대캐피탈은 "이미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선수에게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차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도 "선수 본인이 이미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이런 결정이 나는 것은 황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회는 요지부동이다. "국가대표팀의 전력 향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협회의 결정에는 아쉬움이 많다. 일단 협회는 5월과 6월 열린 월드리그 당시 여오현의 입장을 존중했다. 예비 엔트리에는 여오현의 이름을 올렸지만 차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두달 만에 입장을 뒤엎었다. 기준이 없는 처사다.
여기에 시대의 흐름도 무시한다. 다른 종목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를 인정했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도 마찬가지다. 박지성의 복귀 여론이 있지만 홍 감독은 "선수 본인의 의사를 따를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한배드민턴협회도 마찬가지다.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남자 단식 에이스 이현일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현일은 7월 초 열린 전국여름철종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 일반부 단식에서 우승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배드민턴협회는 선수 본인의 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