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박찬호한테 홈런 하나친 게 끝이잖아"
롯데 3루수 황재균이 양승호 감독에게 항의를 했다가 본전도 못찾은 채 줄행랑을 쳤다. 무슨 사연일까.
28일 대구구장에서 삼성과 시범경기를 앞둔 양승호 감독은 고민에 빠진다. 팀의 4번을 맡아줬던 홍성흔의 왼쪽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성흔은 "지난 25일 부산에서 LG와 경기를 하던 중 LG선발 주키치의 공을 칠 때 '찌르르'하는 통증이 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심각한 부상은 아니다. 조금 무리를 하자면 경기에 출전할 수도 있지만, 시범경기이니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양 감독은 홍성흔을 이날 빼기로 결정했다.
양 감독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홍성흔이 빠진 4번 자리에 어떤 선수를 쓸 지에 대한 고민. 한참 선수들을 떠올리던 양 감독은 드디어 라인업에 외야수 전준우의 이름을 써넣었다. '호타준족형' 선수인 전준우는 사실 4번을 맡을 정도의 거포는 아니다. 프로에서 단 한 차례도 4번을 맡은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건국대) 시절에도 몇 차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양 감독은 전준우의 콘택 능력에 신뢰감을 보였다.
황재균의 투정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양 감독은 전준우를 4번으로 확정하고 나서 전준우에게 "너 오늘 출세했다"며 농담을 건넸다. 그러자 득달같이 양 감독에게 다가온 황재균은 "감독님, 이건 아니죠.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황재균의 항의가 이어진다. "준후형은 타율도 1할대에 타점도 아직 없어요. 저도 5타점이나 되는데 타점이 없는 타자를 4번으로 쓰시면 안되죠".
평소에도 양 감독과 자주 농담을 주고 받는 황재균이기에 가능한 투정이다. 그 안에 진심은 담겨있지 않다. 양 감독도 이를 알기에 농담으로 받아쳤다. "야, 넌 전에 박찬호한테 홈런 하나 치고서 끝이잖아". 괜히 사서 호통을 들은 황재균은 "헉, 인정합니다"라며 줄행랑을 놓았다.
그제서야 껄껄 웃은 양 감독은 전준우를 돌아보며 "준우야 앞으로 재균이한테 잘해주지 마라. 호시탐탐 네 4번자리를 노리더라"며 경계령(?)을 내렸다. 말수는 적지만, 의리가 넘쳐 동료들의 사랑을 받는 전준우, 묵직한 한 마디로 후배를 감싼다. "감독님, 저렇게 하고 싶어하니 재균이 4번 한번 시켜주세요." 훈훈한 롯데 덕아웃 풍경이다.
대구=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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