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유명 화장품 A사 관계자는 기자가 "면세점 관련 얘기 좀 하자"고 했더니 금방 "큰일 날 소리다. 할말 없다"며 입을 닫았다.
면세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슈퍼 갑'에 눌려 움찔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지만 면세점 업체들은 여전히 국산을 외면하고 있다. 외국 고가 브랜드에는 굽실거리고, 국내 업체는 들들 볶는다.
(주)호텔롯데의 사업부 형태로 돼 있는 롯데면세점은 국내 면세점 1위 기업이다. 면세점 수는 9개로 최다, 매출액도 지난해 사상 첫 2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부끄러운 '꼴찌'이기도 하다. 바로 면세점내 국산매장 면적이다.
롯데 면세점, 매출 1위-국산매장 면적 꼴찌
관세청의 '보세판매자 운영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공항 이외지역 소재 면세점의 국산매장 의무비율은 매장 전체 면적의 20% 이상 또는 330㎡(100평)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롯데면세점은 국산품 매장 비율이 '면세점 빅4(롯데, 신라, 동화, 워커힐)' 중 최저다.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 본점은 국산매장 비율이 7.2%, 잠실의 월드점은 9.8%에 불과하다. 신라면세점 본점(15%), 동화면세점(19.2%), 워커힐면세점(12.6%)보다 훨씬 낮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불법이 아니다. 면세점내 국산매장 면적은 20% 또는 100평만 넘기면 된다. 필요충분조건 중 하나만 충족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롯데면세점 본점 전체 면적은 8994㎡(2723평)인데 국산매장은 651㎡(197평)이다. 실제 롯데면세점 본점에 가보면 온 매장을 점령한 외국 브랜드의 홍수속에 국내 업체들은 겨우 숨만 쉬는 형국이다.
정부는 올해말까지 국산매장 의부 면적을 30% 또는 660㎡(200평)까지 확대할 방침이지만 규모를 키우고 있는 면세점 업체에는 있으나 마나한 규정이다.
이달초 공정거래위원회는 면세점의 과도한 국내업체 수수료를 문제 삼았다. 국내업체에는 최대 66%에 달하는 판매 수수료를 뜯어가지만 외국업체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수료를 부과한다. 한 외국 고가 가방업체 수수료는 14%였다.
이달부터 면세점 업체들은 국내업체에 대해 3~11%의 수수료를 깎아주기로 했지만 이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관행으로 비춰볼 때 면세점은 국내업체에 인테리어 비용 청구, 재계약 시 수수료 조정, 매장 위치 변경시 수수료 조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할 가할 것이 뻔하다.
노예 계약에 울분 삼키는 국산 브랜드
국내의 모든 면세점 브랜드에 입점해 있는 국내업체 B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익명 처리를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업체마다 수수료가 다르기 때문에 명확한 정보가 새나가면 면세점에서 금방 어디인지 알아챈다. 향후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다. 속에 '천불이 나도' 입도 뻥긋 못한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입점해 있다"고 하소연했다. 면세점내 물품 판매로는 국내업체들은 수익을 낼 수 없다. 그렇지만 브랜드 인지도 상승 등 미래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면세점이 거대 유통업체를 끼고 있기 때문에 밉보이면 치명타를 입는다. 롯데면세점은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와 직간접적으로 엮여 있다. 실제 수익을 내는 유통망을 쥐고 있기에 국내 업체들은 영원히 '을'이다.
국내업체를 옥죄는 또 하나의 사슬은 기상천외한 옵션 계약이다. 인테리어나 매대 설치, 매장 확대 등을 할 때마다 수수료는 자꾸 올라간다. 계약 사항은 절대 비밀이다. 시장 논리가 통하지 않는 사실상 '노예 계약'이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내 국산브랜드 매출액은 18.8%였다. 매장면적이 평균 12%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무시못할 수치다.
더 눈여겨볼 것은 매출 증가율이다. 지난 4년간 면세점 시장은 연평균 30.3%의 고성장을 했다. 이중 해외브랜드 매출은 27% 증가했고, 국산브랜드는 54.1% 증가했다. 국산브랜드의 품질 향상과 더불어 한국산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중국관광객 증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국산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명품들이 쌓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해 주는 차원"이라며 "(먹는)김은 브랜드 차이가 미미하다. 그냥 김이다. 하지만 외국 명품은 수십년간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차별이 아니다. 단순비교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외국브랜드에 대한 꾸준한 수요가 있지만 면세점이 외국브랜드 확대를 부추기는 측면도 크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최근 외국 고가브랜드 루이뷔통의 인천공항 입점을 놓고 경쟁했다. 결국 신라면세점이 이겼지만 불필요한 경쟁 때문에 적지않은 혜택이 주어졌다. 인천공항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았고, 10년 장기계약에 수수료는 10% 수준 밖에 안된다.
한편, 롯데면세점이 소속된 호텔롯데의 지분 상당수를 일본롯데쪽에서 보유하고 있어 롯데면세점의 이익과 관련해 국부유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호텔롯데의 지분 19.2%를 보유한 최대주주는 일본롯데홀딩스다.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씨가 맡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2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률은 6~7%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롯데면세점은 사업초기부터 신영자 롯데 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이 맡아 키워왔으나 신 이사장은 현재 롯데면세점과 관련된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않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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