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이용훈은 지난 22일 광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KIA전 선발투수였다. 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천연잔디를 깐 광주구장의 그라운드 사정이 문제였다. 외야 잔디에 물이 고여 경기가 취소되고 말았다. 경기를 준비하던 이용훈은 "전날 좋은 꿈도 꾸고 컨디션이 좋았는데 아쉽다"며 정리 운동을 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용훈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용훈을 울리고 웃긴 2011년 "야구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
2000년 경성대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이용훈. 2011 시즌을 앞둔 그의 한국나이는 35세였다. 사이판-가고시마로 이어진 스프링캠프에서 그 어떤 선수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2006년 어깨 수술 이후 2008, 2009 시즌 각각 6승, 5승을 올리며 1군에 확실하게 자리잡는 듯 했지만 2010 시즌에는 1군 경기에 단 7번 등판하는데 그쳤다. 여기서 뒤처지면 다시는 1군 무대에 설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1년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개막 후 1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용훈은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열심히 준비했었다. 하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데 2군 생활이 이어지니 허탈했다"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살린 것은 야구에 대한 열정과 주변의 도움이었다. 이용훈은 "박정태 2군 감독님(현 1군 타격코치)께서 '네 공을 믿어라. 너는 할 수 있다'며 항상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다. 함께 2군에 머무르던 손민한, 최향남 선배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도 큰 힘이 됐다"며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재활을 도운 트레이너들에게도 감사의 표시를 했다. 이용훈은 "어깨 수술은 모험이다. 회복될 확률이 20%에 불과했었다"면서 "나도 열심히 재활에 매달렸지만 옆에서 도와준 이영준, 김종훈 트레이너가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이용훈은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 사건을 터뜨릴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17일 한화와의 2군 경기에서 프로야구 역사상 퍼펙트 게임을 성공시켰다. 아무리 2군 경기라지만 아무나 세울 수 없는 대기록임이 분명했다. 이용훈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생각이 많았던 나, 단순해진 것이 성공의 비결"
이용훈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는 "만약 퍼펙트게임이 나오지 않았다면 지난해 나는 1군에 이름을 절대 올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순위 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용병 크리스 부첵이 부진했고 그 자리를 메울 임시요원을 찾던 도중 양승호 감독의 귀에 이용훈의 퍼펙트 소식이 들어갔던 것이다.
그렇게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극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가 활약할 자리는 없었다. 벅찬 마음을 안고 플레이오프를 준비했던 만큼 아쉬움도 있었다. 이용훈은 "솔직히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감독님께서 나를 배려해주신 것이었다. 엔트리 등록은 다음 시즌 준비를 확실히 해보라는 감독님의 무언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용훈은 그렇게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스프링캠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공을 던졌다. 많은 훈련량을 소화해내며 '후배들보다 나이는 많지만 몸상태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양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의 공이 정말 좋았다"며 그에게 5선발 자리를 선물했다.
그렇게 개막 후 거둔 승수가 벌써 2승이다. 지난 8일 부산 한화전에서 선발 라이언 사도스키가 부진하자 이용훈이 마운드에 올랐고 그가 던지는 사이 타선이 역전을 시키며 행운의 승리를 거뒀다. 974일 만에 거둔 귀중한 승리였다. 이용훈은 "그동안 나는 운이 없는 선수라고 생각해왔다. 그날 승리로 그동안의 아픔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올해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신바람이 나자 첫 선발등판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과시할 수 있었다. 15일 부산 두산전에서 7⅓이닝 동안 6안타 2볼넷을 허용했지만 위기 때마다 집중력을 발휘하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150㎞에 이르는 묵직한 직구는 이용훈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단, 강력한 구위를 활용하지 못하고 마운드 위에서 도망가는 피칭을 자주해 '새가슴'이라는 오명을 얻어온 그였다. 이용훈은 "많은 분들이 나를 그렇게 바라보시는 것을 잘 알고있다"고 했다. 그는 "핑계를 대자면 나는 그동안 마운드에서 생각이 많은 편이었다. 공을 던지는 순간 그 공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음, 다다음 공의 구질과 코스를 생각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변신을 결심했다. 포수의 리드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것에만 신경쓰기로 했다. 이용훈은 "이제는 민호가 던지라는데로만 열심히 던진다.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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