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배우 이혜영의 카리스마가 빛나는 연극 '헤다 가블러'
10여 년 전 이혜영이 출연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막달라 마리아를 맡았던 그녀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비련의 여인을 소화해냈다. 약간의 금속성이 느껴지는 특유의 강렬한 목소리로 국립극장 무대를 휘저었던 그녀의 연기는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헤다 가블러'(연출 박정희)의 초점은 바로 13년 만에 무대에 컴백한 배우 이혜영이었다.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문호 헨리크 입센의 문제작이고, 더구나 국내 초연이라 관심을 모으기도 했지만, TV와 스크린을 통해서 불꽃 매력을 뿜어온 그녀가 오랜만에 무대 나들이를 한다는 사실이 피부에 더 와닿았다.
입센의 후기작인 '헤다 가블러'는 주어진 상황과 운명에 불편함을 느끼며 해방을 원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의 성을 고집하는 헤다는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 즉 결혼, 사랑, 친척과의 우애, 성공과 섹스에 대한 욕망 등에 지루함을 느낀다. 그냥 '헤다'이고 싶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세상은 그녀에게 강요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혜영은 자유를 원하면서 타인에게는 공격적인, 모순적인 여성 '헤다'를 특유의 에너지로 소화해냈다. 오랜만의 무대였지만 녹슬지 않은 무대감각으로 19세기 말 유럽 사회에서 자유를 갈구하던 여성 '헤다'를 연기했다. 1막 후반부에서 "난 누군가의 운명을 바꿔놓고 말겠어"라고 절규하는 장면, "(운명을) 따르지 않겠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대사에선 가슴으로 전류가 전해진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 박정희 연출이 "헤다를 할 배우는 당신 밖에 없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보여줬다. 다만, 카리스마가 너무 강하다보니(?)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 부분적으로 매끄럽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헤다의 정신분열적이고 불안한 면모도 역설적으로 덜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김수현 호산 강애심 김성미 김정호 등 출연. 28일까지.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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