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이었다.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삼성전에서 넥센 강정호는 결승타를 기록했다. 넥센이 5대3으로 승리한 경기였다. 강정호는 3-3인 8회 2사 2루에서 중견수쪽 적시타로 결승 타점을 기록했다.
앞선 3타석에서 안타가 하나도 없었던 강정호가 4번째 타석에서 값진 결승타를 쳤다. '역시 요즘의 강정호에겐 대단한 집중력이 있다'는 느낌이 든 장면이었다.
그런데 경기후 강정호는 "나에게 찬스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강정호는 그 이닝에서 넥센의 4번째 타자였다.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LG 김기태 감독이었다.
김기태 감독은 올시즌 들어 타자들이 '몽상가'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몇차례 했다. 자신에게 어떤 찬스가 올 수 있는지를 미리 상상하고, 그걸 즐겨야한다는 뜻이다. 김기태 감독의 설명이다.
"우리가 3점 정도 지고 있고 7,8회에 내가 6번째 타자라고 생각해보자. 안타 한두개에 볼넷이 섞이고 또 어떤 타자는 아웃되고 해서 결정적인 2사 만루 찬스가 나에게 올 것을 상상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좋은 2루타를 쳐서 싹쓸이를 할까를 생각해보는거다. 홈런 치는 상상도 해보고 말이다. 그래야 진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옳거니, 왔구나' 하면서 대처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타자와, 미리 그런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본 타자와는 긴장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몽상가'인 타자는 그런 찬스에서 진짜 영웅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강정호의 경기후 멘트에서 김기태 감독이 늘 강조했던 부분이 엿보인 것이다.
김기태 감독에게 이같은 강정호의 발언을 전했더니 김 감독은 큰 호기심을 보였다. 이어 "현역 시절에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하면 상대편 타자들도 감탄하게 되는 멋진 타격 기술로 좋은 안타를 칠까, 정말 치기 어려운 몸쪽 공을 기막힌 배트 컨트롤로 어떻게 안타로 연결시킬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 홈런왕에 오른 경력이 있으며 최고의 클러치히터로 활약했다.
강정호는 23일 잠실 LG전에서도 4회에 2사 2루에서 중전안타로 타점을 기록했다. 이닝의 4번째 타자였다.
경기후 강정호에게 "이닝이 시작될 때마다 본인에게 어떤 상황에서 타석이 돌아올 것인가에 대해 상상하는가"라고 질문했다. 강정호는 "오늘은 첫 타석에서 상대가 나를 걸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준비를 못 했다"고 말했다. 1회에 1사 2,3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는데 9구째 풀카운트 승부 끝에 몸에 맞아 출루했다. 미리 시뮬레이션을 했다면 몸에 맞기 전에 더 좋은 승부를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었다. 강정호는 "(본래) 전 타석에 걸쳐 시뮬레이션을 하고 들어간다. 첫 타석에서 제대로 준비를 못했는데, 아직도 이런 점에서 나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강정호가 올시즌 홈런 1위(13개) 및 타격 전반에 걸쳐 대활약하고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답변이었다. 강정호는 '몽상가'다.
LG는 올해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승부처에서 뒷심이 부족한 사례를 여러번 노출했다. 두려움이 실수를 낳는 상황이 많았다. 누구보다 김기태 감독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라인업 전반에 걸쳐 '몽상가'가 더 많아져야 하는 것. 바로 LG의 과제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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