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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운 없는 LG 이승우, "운도 실력, 매이닝이 마지막…"

by 이명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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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이션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그때로 돌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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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왼손투수 이승우는 '중고 신인'이다. 지난 겨울, 1군 코칭스태프의 전력 구상에 이승우의 자리는 없었다. 재활조에 머물러 있었던 군 제대 선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겨우내 재활을 잘 했다는 보고가 올라간 뒤, 시범경기와 개막 두번째 경기 선발을 거쳐 당당히 LG 선발로테이션에 자리잡았다.

강속구도 갖고 있지 않은, 볼끝의 변화가 심한 느린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 1군 타자들에게도 주눅드는 모습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교파 투수로 커온 탓에 제구 하나는 자신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생소한 한 무명투수의 공이 조금씩 분석을 당했던 것도 이유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승우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 부담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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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는 연일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결과도 좋았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는 4월28일 부산 롯데전 한 차례 뿐이었지만, 이에 가까운 모습은 꾸준히 보여줘왔다. 4월19일 청주 한화전에선 5⅔이닝 무실점, 5월10일 목동 넥센전에선 5⅔이닝 2실점(1자책), 5월22일 잠실 넥센전에서도 5⅓이닝 2실점(1자책)했다. 그럼에도 승리는 없었다. 올시즌 이승우의 성적표는 9경기서 0승5패 평균자책점 4.50이다.

유독 이승우가 등판했을 때 LG 타선은 침묵했다. 호투에도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할 망정 패전투수가 되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야수들의 실책 또한 많이 나왔다. 지독한 불운에 시달렸다. 남들 같았으면 운좋게 1승을 올렸을 만한 상황도 쉽게 오지 않았다. 이런 데서 오는 상실감은 투수의 멘탈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쉽사리 무너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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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는 이에 대해 "감독님과 코치님이 계속 기회를 주는 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며 "승리가 없으니까 더 그랬다. 1승을 올려야한다는 생각이 부담이 안 됐다면 거짓말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선발 등판 이후 조금씩 승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자신도 모르게 부담이 커졌다. 마운드에선 느끼지 못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 혹은 등판 전에는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지난 5월16일 인천 SK전에선 1⅔이닝 4실점이라는 최악의 피칭도 나왔다.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2일 경기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나왔다. 1회초 정성훈이 판단 미스로 병살플레이를 성공시키지 못하자 곧바로 최진행에게 3점홈런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4회말 타선이 힘을 내며 5-4로 역전에 성공, 5회만 막으면 승리투수가 되는 상황이 왔다. 선두타자 장성호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며 승리요건까지 아웃카운트 2개만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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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덕아웃에서 차명석 투수코치가 뛰어나왔다. 생각도 못한 교체 사인. "수고했다"는 차 코치의 말 한마디에 이승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정성훈은 1회가 끝난 뒤, 그리고 자신의 스리런포로 홈런을 확정지은 뒤 거듭 "승우야, 미안하다"고 말했다.

물론 두번째투수 우규민이 6회 동점을 허용하긴 했다. 이승우가 계속 던졌다 하더라도 어떤 상황이 왔을지 모른다. 이승우는 또다시 '데뷔 첫 승' 대신 선배들과 코칭스태프의 격려만 한가득 받았다.

하지만 마음가짐은 달라진 듯 했다. 이승우는 경기가 끝난 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근 '네가 승리를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그때 깨달았다. 로테이션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매이닝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던지다 보면, 언젠간 승리도 올 것"이라며 웃었다.

이승우의 지독한 불운은 어찌 보면 데뷔 처음 1군에서 공을 던졌던 2009년부터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시즌 막판 순위싸움에서 밀려나자 김재박 감독은 이승우를 비롯한 가능성 있는 젊은 투수들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줬다. 데뷔 후 네번째 등판이자 세번째 선발등판이었던 그해 9월16일. 이승우는 잠실에서 당시 1위 SK를 상대로 7⅓이닝 1실점으로 깜짝 호투를 선보였다.

이날 결과는 2대2 무승부. 13연승을 달리며 1위 KIA를 0.5게임차로 맹렬히 추격하던 SK의 발목을 잡은 경기였다. 당시 승률 규정상 '무승부=패배'와도 같았기 때문에 SK에겐 뼈아픈 한 판이었다. 이후 SK는 잔여경기에서 전승을 거뒀지만 결국 1경기차로 2위에 머물렀다. 이날 무승부만 없었다면 1위는 SK의 차지였다.

이승우도 당시의 경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꼬인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운도 실력"이라며 웃을 뿐이었다. 불운을 뛰어넘는 호투를 선보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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