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거포를 깨운 것은 사소한 깨달음이었다.
KIA 나지완에게 6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지독한 '3무(無)'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홈런, 타점, 장타'가 단 1개도 없었다. 'KIA의 홈런타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마음고생이 심했다.
슬럼프는 늪을 닮았다. 빠져나가야 한다고 의식하는 순간 더 깊게 빠져든다. 나지완도 그랬다. 별 짓 다해봤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배트를 더 많이 돌렸다. 배트 무게도 바꿔봤다. 소용이 없었다. 6월10일부터 24일까지 11경기에서 기록한 안타는 단타 2개. 9경기는 아예 무안타였다.
26일 잠실 LG전. 첫 두 타석까지만 해도 '역시나'였다. 주자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 5회 2사후 맞은 세번째 타석. 풀카운트에서 나지완은 LG 선발 최성훈의 6구째 바깥쪽 변화구를 커트해 내듯 헤드만 살짝 돌려 툭 갖다댔다. 2루수 키를 넘어 우익수 앞에 떨어졌다. '운이 좋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사소해보였던 이 장면이 나지완에게는 히팅포인트 재발견의 커다란 계기가 됐다.
그는 그동안 이상적인 히팅포인트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히팅포인트가 계속 늦길래 앞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훈련을 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았다. '히팅포인트를 앞에 두고 치라'는 이순철 수석코치의 조언은 몸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그저 이상적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던 차 커트하듯 가볍게 만들어낸 5회 안타가 나지완에게는 '유레카'였다. 큰 궤적을 그리며 돌아나오는 홈런 스윙은 늦다. 히팅 포인트가 뒤로 밀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컨택이 목적인 스윙은 궤적이 짧다. 배트가 공보다 빠르게 이상적 히팅 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다.
배팅파워가 대단한 나지완인지라 앞에서만 맞으면 반토막 스윙만으로도 장타생산은 충분하다. 6회 터뜨린 투런 홈런이 꼭 그랬다. 중심이 살짝 무너지듯 스윙을 반만 했는데 공은 까마득히 날아 잠실구장 왼쪽 담장을 훌쩍 넘었다. "(6회 홈런과 8회 적시타 모두) 볼카운트가 불리해 큰 스윙을 하지 않고 갖다 맞히려고 했는데 히팅 포인트가 앞에서 맞으면서 좋은 타구가 됐다"는 설명.
자, 이제 답이 나왔다. 스윙 궤적을 컴팩트하게 줄여야 한다. 그래야 히팅 포인트가 앞에서 형성된다. 스윙이 짧아도 나지완의 힘 정도면 충분히 담장을 넘길 수 있다. 이미 몸으로 느꼈으니 당분간 나지완은 무시무시한 타자로 자리매김할 공산이 크다. 다만, 관건은 '유지'다. 상대 배터리의 집중견제와 회피 속에 인내심이 부족하면 자신도 못느끼는 새 장타 욕심이 고개를 쳐들 수 있다. 그러면 또 다시 스윙궤적이 커지고 밸런스가 흐트러질 수 밖에 없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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