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성숙했졌다는데…."
롯데 양승호 감독은 27일 한화전 선발 투수로 고원준(22)을 올렸다.
양 감독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등용법이다. 고원준은 롯데의 제 4선발로 당당히 시즌을 시작했다. 양 감독의 전폭적인 믿음 속에 계속 선발 등판했다.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지난 3일 넥센전에서 4⅓이닝 동안 6안타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된 뒤 2군행을 통보받았다.
그 때까지 고원준이 내민 성적표는 10경기 출전에 1승5패에 불과했다. 그래서 2군으로 강등됐다가 27일 1군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선발 출격을 명령받았다.
올시즌 팀 최다 5연승으로 단독 선두까지 차고 올라온 롯데 입장에서는 2군에서 갓 올라온 투수에게 선발 기회를 줬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험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양 감독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채찍을 휘두를 만큼 휘둘렀으니 이제 당근을 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고원준의 표면적인 2군행 이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구위, 저조한 피칭 성적이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고원준은 야구판에서 제법 소문난 '애주가'다. 음주로 인해 양 감독에게 여러 차례 찍혔다.
비단 야구 뿐만 아니라 어떤 스포츠 종목이든 술 마시기 좋아하는 선수들은 으레 술 한잔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마련이다. 술 좀 마신다고 그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원준은 어려서인지 눈치가 없었다. 양 감독의 레이더망에 자꾸 걸렸다. 공교롭게도 고원준이 살고 있는 곳은 부산의 전통적인 번화가인 서면 인근이다.
보는 눈이 많은 이 곳에서 술을 즐겼다는 사실이 양 감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한두 번 애교로 봐줄 정도가 아니라 조금 심했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양 감독이 앞으로 고원준이 음주를 하다가 걸리면 코치들에게도 벌금을 물리겠다고 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이같은 '일탈'로 인해 양 감독의 애를 태웠던 고원준은 실전에서의 성적마저 저조한 바람에 2군행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양 감독은 "정신 좀 차리라고 벌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 감독은 부모의 심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 당장 회초리를 들었지만 반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2군 코칭스태프로부터 매일 보고를 받으면서 '고원준이 술은 멀리하고 훈련을 열심히 하면서 다시 몸을 만들었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양 감독이 "원준이가 부산 서면에서 술 마시는 일이 없어졌다는 보고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성숙해진 것 같다"며 반색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1군으로 복귀시킴과 동시에 선발로 출격시키는 '당근'을 내밀었다. 양 감독으로서는 고원준에 대한 신뢰의 표시다.
양 감독은 "고원준은 롯데가 앞으로 키워야 할 자원이다. 이제는 믿음을 줄 때가 됐다"면서 "깊이 반성하고 돌아온 만큼 단단히 마음먹고 경기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양 감독은 올시즌 초반부터 "마운드가 좋아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고원준이 결국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게 믿었던 자식같은 제자가 사소한 음주 습관으로 인해 적잖은 실망감을 안겼다. 그래서 '채찍'을 꺼내들었다. 이제는 다시 '당근'을 줄 때가 됐다.
27일 고원준의 1군 복귀 선발 등판은 '부모가 자식이 미워서 회초리를 드는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보여주는 시험무대다.
양 감독은 그만큼 부모의 심정으로 고원준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버지' 양 감독의 이같은 심정을 알았을까. 고원준은 29일 만에 선발 등판한 이날 한화전에서 5이닝 동안 4안타 4볼넷 3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다.
부산=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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