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건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죠."
투수가 타격을 하지 않는 대신 타격만 전담하는 선수를 타순에 넣는 지명타자(DH, Designated Hitter) 제도는 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원년부터 존재했다. 언뜻 생각하면 수비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타자에게 유리한 제도인 것만 같다.
그러나 현장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지명타자의 딜레마'가 있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이 수비에 나설 때 벤치에서 쉴 수 있어서 체력유지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그만큼 공백이 생겨서 경기감각이 쉽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차라리 수비를 하는 게 공격에 더 도움이 된다"고까지 말하는 선수도 있다.
이런 곤란함은 애초부터 지명타자로만 나섰던 선수가 아니라 수비를 맡았다가 체력 안배나 포지션 중복 등의 이유로 지명타자를 맡게된 선수가 주로 느낀다. KIA 주전 1루수였던 최희섭도 마찬가지. 최희섭은 지난 6월 22일 조영훈이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한 이후 10경기 중 6경기에서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2경기는 컨디션 난조 때문에 출전하지 않았고, 2경기는 경기 중 대타로 투입됐다.
KIA 선동열 감독이 최희섭을 지명타자로 돌리고, 1루를 조영훈에게 맡긴 것은 최희섭에 대한 배려와 팀 공격력 극대화를 위한 것이다. 올해 초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바람에 체력훈련이 부족했던 최희섭에게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조영훈과 최희섭을 동시에 투입해 팀 공격력을 살리려는 목적이다.
선 감독의 노림수는 매우 큰 효과를 내고 있다. KIA는 조영훈 합류 이후 10경기에서 8승2패를 거뒀고, 이 기간의 팀타율은 무려 3할2푼6리까지 치솟았다. 최희섭 역시도 5일 광주 두산전이 우천 취소된 이후 인터뷰에서 "영훈이가 온 뒤로 팀이 한층 좋아졌다. 8승2패의 성적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나도 체력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한다.
최희섭은 조영훈의 합류 이전에 출전한 54경기 중에서 지명타자로 단 4경기에만 선발출전했다. 그러나 최근 10경기에서는 6번 지명타자로 나섰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시즌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10경기의 결과로 보면 그러는 편이 팀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희섭에게도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하루 빨리 '지명타자'의 낯설음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최희섭은 배팅게이지를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해야할 몫은 타격에 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최희섭은 "지명타자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팀 동료들이 수비를 할 때 벤치에 앉아있다보면 경기감도 떨어지고 몸도 굳게 된다. 그래서 지명타자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타격에 대비해야 한다"며 지명타자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밝혔다.
최희섭은 "선수 각자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나 스윙연습을 하는 등 지명타자로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지명타자로 성공한 홍성흔 선배도 경기 중에 보면 덕아웃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럴땐 100% 스윙연습을 하러 간 것이다. 그런 노력이 바로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라며 "나 역시도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명타자 경험이 나보다 많은 팀 후배 (나)지완이가 많은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자신의 능력치를 끌어올리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후배에게도 기꺼이 조언을 청한다는 뜻이다. 1루수에서 지명타자로 변신한 최희섭의 생존투쟁이 어떤 결실을 맺게될 지 주목된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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