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공격. 줄임말은 '닥공'이다. 축구에서 유래한 신조어.
야구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닥공 피칭. KIA 최향남(41)이 주인공이다. 야구 나이 환갑을 훌쩍 넘긴 불혹의 베테랑. 연일 놀라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8경기서 8이닝 동안 3세이브 2홀드, 평균 자책점은 제로다. 0의 행진, 또 하나 있다. 4사구가 단 1개도 없다. 반면, 탈삼진은 무려 10개다. 삼진/볼넷(K/BB) 비율을 따지자면 그야말로 무한대다.
4사구 제로의 비밀? 간단하다. 승부가 빠르다.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최향남은 LTE 속도로 던진다. 인터벌이 짧은데다 무모할 정도로 스트라이크에 공을 구겨넣는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유인구도 없다. 무조건 정면 승부다. 짧은 간격에 마치 피칭머신처럼 스트라이크 존에 쉴 새 없이 공이 날아드니 타석의 타자는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어지간한 공에 배트를 내밀 수 밖에 없다. 빠른 공도 아닌데 이상하게 배트 중심에 맞는 타구가 많지 않다. 스피드건에 찍히는 수치는 대부분 130㎞대. 그럼에도 타자들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향남 미스터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경기당 평균 1이닝씩 소화하는 최향남의 이닝당 투구수는 13.6개. 1타자당 평균 투구수는 3.76개다. 그 어느 투수보다 빠른 승부다. 무 4사구의 전광석화같은 승부는 타자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란 뜻이다. 좌타자든 우타자든, 강타자든 아니든 최향남은 오직 자기 페이스대로만 던진다. 실제 지난달 20일 대구 삼성전에서 배영섭 박한이 최형우 이승엽의 4타자를 13개의 공으로 돌려세웠다. 모두 삼성의 주력 타자들이다. 지난 4일 광주 두산전에서도 이종욱 정수빈 김현수의 두산의 대표 좌타 라인을 공 13개만에 삼자범퇴로 물리쳤다. 8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아예 K-K-K로 경기를 매조지했다.
어느 강타자에게도 스트라이크존에 겁없이 찔러넣을 수 있는 이유. 궁금했다. 최향남의 답변? "관건은 타자보다 내 자신과의 승부다. 마운드에 올라가 공 하나를 던져보면 오늘의 나를 알 수 있다. 승부가 될지 안될지에 대한 판단이 선다. 밸런스가 이뤄지는 날에는 어느 타자와 상대해도 이길 수 있다. 당연히 내 볼을 던질 수 있다. 안 맞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트리플A 당시에는 상대 타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오직 나의 밸런스에만 신경을 쓰고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냥 트리플A 타자들이라고 생각하고 던진다."
타자를 가리지 않는 최향남의 '닥공 피칭'. 메이저리그 도전 당시부터 몸에 밴 일종의 습관이었다. 도망가는 피칭 끝에 남발한 4사구에 이어 결정적 한방을 허용하고 고개를 떨구는 뻔한 레퍼토리의 투수들. 그들에게 투수 코치들이 귀에 못이 박히게 강조하는 금과옥조가 '타자 신경쓰지 말고 자신있게 네 공을 던지라'다. 어느덧 코치급 나이에 접어든 프로야구 최고령 투수 최향남. 그가 이 말 뜻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후배 투수에게 그는 배울 점이 참 많은 살아있는 교본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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