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마다 절대 존재감을 과시하는 선수가 있다. KIA 타선에서는 이범호가 그런 존재다. 그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를 부른다. 상-하위 타산의 짜임새가 확 달라진다.
KIA 선동열 감독은 그토록 중요한 이범호를 9일 2군으로 보냈다.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남은 9경기. 이범호 없이 치르겠다는 뜻이다. 롯데-삼성-두산 등 무림의 강호들과의 남은 9연전. 이범호가 꼭 필요할 법 했던 시점.
선 감독은 왜 이범호 카드를 포기했을까. 고심 끝 용단이다. 이범호를 타선에 두면 사령탑은 편하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범호마저 제 역할을 못하는데 코칭스태프로선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 선 감독으로선 스스로 안전장치를 제거한 셈. 왜 그랬을까. 이름보다 실리를 택한 결과다.
폭염이 덮친 7일 목동 넥센전. 4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한 이범호는 두 타석에서 내리 삼진으로 물러났다. 5회 윤완주로 교체됐다. 다음날인 8일 넥센전을 앞두고 선 감독은 "캠프를 소화하지 못한 거구의 최희섭은 체력적으로 힘들어 자기 스윙조차 하지 못한다. 이범호 역시 햄스트링 여파로 타구에 힘을 싣지 못한다"며 "오늘 경기를 지켜본 뒤 결정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범호의 몸상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하겠다는 뜻. 이범호는 이날 7번 3루수로 출전했다. 7번 출전은 지난해 KIA 입단 후 처음이었다. 한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2007년 4월14일 대전 롯데전 이후 무려 1912일만의 7번 출전. 타순 재배치에도 불구, 이범호는 4구-땅볼-땅볼을 기록한 뒤 7회 수비부터 박기남으로 교체됐다. "오늘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던 선 감독은 자신의 말대로 다음날 이범호를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사실 지금까지 이범호의 출전은 억지로 강행된 측면이 크다. 왼쪽 햄스트링과 손목이 완전치 않았지만 시즌 초반부터 고전하는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던 주축 선수로서의 책임감도 한 몫했다. 하지만 무리한 출전은 본인에게 스트레스가 됐다. 왼쪽 햄스트링 여파로 타격 시 축이 되는 왼발이 지면에 단단히 고정되지 못하고 돌아가며 벌어졌다. 축을 고정시키지 못하니 타구에 힘을 실을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넘어갈만한 타구가 펜스 근처에서 떨어졌다.
전력 질주를 할 수 없다는 점도 스트레스 중 하나였다. 완전치 않은 상태였지만 이범호는 이름값과 선구안으로 꾸준히 4사구를 얻어 출루했다. 하지만 어지간한 안타로는 2루에서 홈을 파고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범호는 최선을 다했다. 주사를 맞아가며 출전을 강행했다. 8일 넥센전에서는 1회 1사 1,3루에서 적극적인 2루 슬라이딩으로 병살을 막으며 1-1 동점을 만드는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불완전 몸 상태였다.
강팀과의 결전을 앞두고 이범호 카드를 접은 선 감독의 결단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진검 승부에 대비한 포석이다. 선 감독은 누차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5할 승부만 하면 성공이다. 승부는 그 이후"라고 말하곤 한다. '건강한' 이범호는 진짜 승부에서 꼭 필요한 카드다. 이범호의 깜짝 2군행. 오늘을 희생해 내일을 기약하는 선 감독의 승부수가 던져졌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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