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실수부터, 팀을 흔드는 '대형사고'까지. 프로야구 선수단 내에는 그들 만의 규율이 있다. 바로 언제나 낼 수 있는 '벌금'이다.
지난 10일 1군에 돌아온 LG 봉중근은 복귀 후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날 이후 팀이 상상외로 어려워져서 하루하루가 힘든 시간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잠실 롯데전에서 시즌 첫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뒤 소화전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오른 손등 골절상. 순간의 분을 이기지 못한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마운드의 구심점이자 '수호신'을 잃은 팀은 이후 12경기서 2승10패를 기록하며 7위까지 추락했다.
봉중근은 구단 내규에 따라 벌금을 부과받았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큰 액수로 알려졌다. 아마도 '프로선수로서의 몸관리 실패'와 '팀 분위기 저해' 등이 사유였을 것이다.
SK 에이스 김광현의 우천 세리머니 후유증 역시 '본보기'가 됐다. 지난달 29일 인천 LG전이 취소된 뒤 방수포 위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하다 어깨 근육이 부어 오른 김광현은 현재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상태. 졸지에 선발투수 1명을 잃은 이만수 감독은 향후 같은 일이 발생할 시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고개숙여도 벌금? 독특한 벌금 규정들
올시즌 하위권을 벗어나 선전하고 있는 돌풍의 팀, 넥센에는 특이한 벌금이 있다. 바로 '삼진아웃 뒤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 고개를 숙이면 벌금 10만원'이다.
이 때문이었을까. 시즌 초반 넥센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이 보였다.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당당히 덕아웃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고, 영 표정관리가 힘들 땐 허공을 쳐다보는 선수들도 있었다.
아웃돼도 좋으니 자신감을 가지라는 코칭스태프의 주문이었다. 창단 후 줄곧 하위권에 맴돌며 선수 트레이드 등으로 '불쌍한 팀'의 이미지가 굳어지자 내린 처방이다. 선수들마저 두려움에 발목을 잡히는 걸 방지하고자 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대성공이다. 체질 개선에 대한 이런 사소한 노력 하나하나가 넥센을 바꿔놓았을 지도 모른다.
KIA 선동열 감독은 부임 직후 눈에 띄게 살이 찐 선수들을 보고는 각자 체지방률을 23% 밑으로 떨어뜨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연봉의 5%를 벌금으로 부과한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결과는 전원 통과. 고액 연봉자의 경우 상당한 액수를 내놓는 일이 발생할 뻔 했지만, 이를 악문 선수들은 모두 기준치를 통과해냈다.
9회말 끝내기 안타를 치고도 벌금을 물 수도 있다. 이는 8개 구단 모두에 해당하는 일이다. 빈번한 '사인 미스'에 대한 처벌이다. 공 하나로 승부가 결정되는 상황. 타자 또는 주자가 작전 사인을 보지 못하거나, 타자가 웨이팅 사인에도 방망이를 휘둘렀을 땐 모두 벌금 부과 대상이 된다.
벤치의 지시를 어겨 끝내기 안타로 팀에 승리를 선물한다 해도 규칙은 규칙. 팀 승리를 이끌고도 지갑을 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거액의 벌금, 어떻게 정하고 어떻게 쓸까?
대개 이러한 벌금은 구단에서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구단 내규'라고 말은 하지만, 이는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간의 약속이다.
보통 한 시즌을 시작하는 스프링캠프 때 규정을 만든다. 예를 들면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훈련 지각엔 얼마, 사인 미스엔 얼마를 부과한다 등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동에 대한 벌금도 정한다. 규정이 정해지면, 곧바로 시행이다.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하는 전지훈련 때부터 선수단에 '규정'을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벌금이 부과되는 과정은 간단하다. 벌금 항목의 윗쪽에 적혀 있는, 사소한 일의 경우 코치진이 선수에게 직접 통보한다. 지각 등 누가 봐도 규칙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엔 선수가 알아서 '자진 납세'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봉중근처럼 복잡한 사안일 경우, '미니 상벌위원회'가 열린다. 코칭스태프 대표, 선수회 대표가 모여 사안의 경중에 대해 따지는 것이다. 여기서 미리 정한 규정과 비교해 최종적으로 부과할 벌금 액수를 결정한다. LG의 경우는 코칭스태프와 선수회에서 함께 논의하지만, 코칭스태프 회의로만 결정되는 구단도 있다.
벌금은 적게는 10만원부터 많게는 100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구단별로 연봉의 10%까지 부과하기도 하는 등 천차만별이다. 넥센의 경우 음주사고나 폭행 등 '사고'를 쳤을 땐 연봉의 10%를 벌금으로 물리고, 선수 생활 지속 여부는 구단과 협의한다. LG는 전임 박종훈 감독 시절 선수들이 인터넷 상에서 문제를 일으키자, '인터넷 상호 비방 금지' 규정을 신설해 벌금 액수를 구단 사상 최고액인 1000만원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돈은 어떻게 운영될까. 선수단 상조회는 매달 일정액의 상조회비를 받는다. 구단 내 경조사 등을 챙기기 위함이다. 여기에 각종 벌금으로 걷은 돈이 더해지는 것이다. 전지훈련지에서 일종의 회비로 쓰는 일도 있고. 액수가 커졌을 땐 이를 기부나 봉사활동 등 사회공헌활동에 쓰기도 한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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