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선동열 감독은 냉철한 승부사다.
특히 투수교체 타이밍에 대해서는 철저하다. 최고 투수 출신답게 본인의 눈을 믿는다. 투구수에 따른 구위 변화를 면밀히 체크한다. 교체 시점이라 판단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삼성 감독 시절부터 그랬다. 늘 교체 타이밍이 한 템포 빨랐다. 그러던 선 감독이 드물게도 '예외'를 인정했다. 베테랑 투수 서재응에 대해서였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17일 광주 두산전. 0-2로 뒤진 6회초. 김동주 양의지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운 서재응은 2사후 오재일에게 2루타를 허용했다. 이원석에게 고의 볼넷으로 2사 1,2루. 더 이상의 실점은 곧 팀의 패배를 의미했다. 내일도 없었다. 태풍 '카눈'이 맹렬한 기세로 북상하던 중. 남은 2경기 우천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전반기 마지막 경기. 선 감독으로선 쉽게 놓을 수 없는 경기였다. 긴장감이 넘쳤다. 불펜에서는 에이스 윤석민이 몸을 풀며 출격 준비 완료. 이미 서재응의 투구수는 110개로 한계 투구수를 채운 상황이었다. 두산이 김재호 대신 대타 오재원을 준비시키는 사이 서재응은 연습투구를 하고 있었다. 이강철 투수 코치가 서재응의 상태 체크를 위해 마운드로 향했다. 미안한 마음에 이 코치는 웃으며 투수의 의사를 물었다. 늘 쿨하게 벤치의 뜻에 따르던 서재응. 이날은 달랐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닝을 끝마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하게 표시했다. 80%쯤 교체를 염두에 두고 올라간 이 코치가 난감해진 상황. 벤치의 선 감독을 바라봤다. 서재응의 의지를 확인한 선 감독은 오른 손목을 마운드 쪽으로 흔들었다. '그냥 두라'는 메시지였다. 이 코치에게는 손짓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서재응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부담 탓인지 '킬러' 오재원을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2사 만루. 이번엔 불펜에서 몸을 풀던 투수들이 벤치를 쳐다 봤다. 투구수 115개. 또 한번 교체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선 감독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재응을 통해 이닝을 마치겠다는 뜻이었다. 이날 승리가 절실했던 선 감독 입장에서는 중요한 결단이었다. 설령 게임을 놓치더라도 서재응의 마음이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다행히 서재응은 정수빈을 파울플라이로 처리하며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서재응은 6이닝 2실점으로 시즌 9번째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시즌 4패째(4승). 선 감독도 서재응의 잇단 불운이 영 마음에 쓰였던 것 같다. 경기 전 "재응이가 운이 없다. 잘 던지고도 승수를 따내지 못한 경기가 너무 많다. 타자들에게 뭔가 해줘야 되는것 아니냐"며 안쓰러운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직전 등판이었던 8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1-1 동점이던 4⅔이닝만에 강판됐다. 잘던지고 있었고 투구수도 72개 밖에 안됐다. KIA가 2대1로 이겼지만 서재응은 승리투수가 될 수 없었다.
선 감독으로선 여러모로 서재응이 안쓰러웠던 상황. 6회를 마쳐 혹시 모를 6회말 역전을 기대했으나 KIA 타선은 침묵했다. 마운드에 있는 동안 단 1점도 올리지 못했다. 투수 교체에 단호한 선 감독의 이례적 손사래. 서재응의 불운과 선 감독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선 감독은 경기후 이렇게 말했다. "재응이가 초반 실점에도 불구, 잘 던져줬다."
광주=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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