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가히 트라우마로 부를 만 하다. 역시 번트는 쉬운 게 아니다.
LG의 후반기 첫 3연전은 잊고 싶은 경기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올시즌 상대전적에서 7승3패로 여유있게 앞서있던 두산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26일 마지막 경기서 2176일만에 승리를 거둔 신재웅이 초반에 무너졌다면, 3연전을 모두 내줄 뻔 했다. 두산에게 갖고 있던 압도적 우위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상대전적은 8승5패다.
이번 3연전에서 눈에 띈 건 '기본이 사라진' 플레이였다. 벤치의 희생번트 사인에도 실패가 잇달았고, 미숙한 주루 플레이로 공격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계속 나왔다.
기본을 잊은 번트 실패, 모두 팀 패배로 이어졌다
번트는 1루 주자를 2루로 보내는 가장 쉬운 수단이다. 번트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사 1루나 1,2루 등에서 1사 2루 혹은 1사 2,3루로 주자를 안전하게 진루시키려는 목적이 있을 땐 '희생번트'란 표현을 붙여준다. 득점권 찬스를 만들기도 하고, 병살타를 피하는 효과도 있다. 벤치에서 히트 앤 런 사인과 함께 가장 많이 나오는 지시가 희생번트다.
이번 3연전에서도 어김없이 무사에 주자가 나가면 번트 사인이 나왔다. 톱타자 오지환이 단독 도루에 능한 선수가 아니기에 안전하게 2루로 보내는 수단이 필요했다. 오지환 외에도 무사에 주자가 나갔을 땐 어김없이 번트 사인이 나왔다.
하지만 24일 첫 경기부터 출발이 좋지 못했다. 1회초 1번타자 오지환이 볼넷을 골라 나갔다. 2번타자 김태완은 초구부터 번트를 댔으나 타구가 뜨면서 투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후속타자들의 안타가 이어져 선취점을 냈지만, 번트 실력이 좋은 김태완이었기에 다소 아쉬운 장면이었다.
2회에도 마찬가지였다. 선두타자 서동욱이 볼넷을 골라나갔지만, 김태군의 초구 번트 역시 포수 파울 플라이가 됐다. 니퍼트의 장염으로 임시 선발로 나온 임태훈이 초반에 흔들렸음을 감안하면, 두 차례의 번트 실패는 상당히 컸다. 달아나야 할 때 달아나지 못했고, 5회 리즈가 무너지면서 게임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25일도 마치 리와인드를 한 듯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3회 김태군이 선두타자 서동욱의 볼넷 이후 번트를 댔으나 똑같이 초구에 포수 파울 플라이로 물러났다. 가히 '번트 트라우마'로 부를 만한 모습이다.
사인도 없는데 스리번트? 책임감도 좋지만…
번트는 보통 두 번의 기회가 있다. 하지만 세번째 기회는 녹록치 않다,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대는 번트가 파울이 되는 경우, 타자가 아웃되기 때문이다. 바로 스리번트 아웃. 이는 타자가 투스트라이크 이후 투수의 공을 계속해서 번트로 쳐내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독특한 규정이다,
25일 경기서 김태군은 5회엔 번트를 성공시켰다. 스리번트였다. 우전안타로 출루한 서동욱은 2루로 안전하게 진루했다. 김태군은 초구에 나온 런 앤 히트 사인 때 파울타구를 날렸고, 두번째 희생번트 사인 때도 파울로 고개를 숙였다. 자칫 횡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김태군은 번트를 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동안 LG를 괴롭혔던 번트는 26일에도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0-0으로 팽팽하던 6회 선두타자 오지환이 볼넷을 골라 출루했다. 김태완은 또다시 1차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듯 두 번이나 번트를 실패했다. 하지만 김태완 역시 스리번트를 성공시켜 오지환을 2루로 보냈다.
25일과 26일 나온 두 차례의 스리번트. 그 안에는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숨어있었다. 김태군의 스리번트가 벤치의 사인에 의한 것이었다면, 26일에는 사인이 없는데도 김태완 스스로 스리번트를 댄 것이다. 이는 중계카메라에 잡힌 김기태 감독의 표정에서 묻어나왔다. 김태완의 스리번트 이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8회 추가점을 내는 상황에서 나온 '큰' 이병규(배번9)의 번트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김태완의 출루로 무사 1루 찬스를 잡은 상황. 이병규는 초구에 가볍게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다. 이때 역시 김 감독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사인이 없었는데 이병규 스스로 번트를 댄 것이다.
올시즌 LG는 유독 스리번트가 많다. 물론 초반엔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의미의 벤치 사인이 많았다. 하지만 경기를 치러가면서 벤치 사인이 아닌데도 희생번트를 대는 상황, 그리고 번트 실패로 투스트라이크에 몰린 뒤 스스로 스리번트를 대는 상황이 많아졌다.
자발적인 번트, 이는 분명 선수들의 책임감에서 나온 것이다. 작전수행능력이 좋은 김태완은 24일 첫 타석 번트 실패 후 "평소 번트를 실패한 적이 없다"고 자책했다. 자신에게 용납이 안 된 것은 물론, 팀에도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주장' 이병규는 이전에도 벤치 사인 없이 주자와 눈빛을 교환한 뒤 자발적으로 희생번트를 댄 적이 있었다.
분명 번트 실패는 팀에 큰 타격을 준다. 단순히 작전 하나가 물 건너간 정도가 아니다. 멘탈게임인 야구에서 순식간에 상대방에게 분위기를 넘겨줄 위험성이 있다. LG는 '번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나친 압박감은 독이 될 것이다. 하나 더, 책임감에서 우러나온 '노사인 스리번트'. 성공했을 땐 박수받을 수 있지만, 실패했을 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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