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헌은 MBC '닥터 진'을 "땀을 많이 흘린 작품으로 기억할 것 같다"고 했다. 사극 복장으로 견뎌야 했던 폭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진심과 노력을 많이 쏟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4개월간의 '구슬땀'이 '자부심'으로 영글었다. 그래서 SBS '신사의 품격'에 다소 뒤졌던 시청률이 크게 아쉽진 않단다. 1860년대 조선에 불시착했던 송승헌을 21세기 서울에서 만났다. 시간도 뛰어넘은 그의 '방부제' 외모에 인터뷰 자리에선 "진짜로 타임슬립한 거 아니냐"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닥터 진'으로 사극의 재미 느껴
마흔살 전에는 사극에 출연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시나리오를 검토할 때도 사극 장르는 제쳐두곤 했다. 왠지 딱딱하고 무거울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닥터 진'을 만난 후 사극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다. '닥터 진'은 구한말로 거슬러온 의사가 의술을 통해 역사에 개입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저는 현대에서 온 인물이라 사극 연기에 대한 부담이 덜했죠. 사극에는 현대극과는 다른 묵직한 힘이 있더라고요. 연기를 할수록 매력과 재미를 느꼈어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고 실존인물들을 만나는 것도 흥미로웠죠." 시즌2에서는 흥선대원군을 현대로 '타임슬립'시켜서 '민폐 캐릭터'로 만들면 재미있지 않겠냐며 장난스럽게 웃기도 했다.
송승헌은 "내가 진짜 시간여행자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고 한다. 배우 인생 중에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꼽으라면 1997년부터 3년간 방영된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다. '숯검댕이 눈썹'으로 불린 송승헌은 이의정과의 로맨스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요즘에도 신동엽 형과 소지섭을 만나면 '다시 한번 시트콤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하곤 해요. 우리가 힘을 뭉치면 가능하지 않겠냐고요. 시간도 흘렀으니까 그때 그 멤버가 다시 모여 성인 버전으로 만들어도 좋겠죠? (웃음)"
이범수-김재중과의 연기는 자극제
'닥터 진'을 통해 사극의 맛을 느꼈지만 숨가쁘게 돌아가는 스케줄은 여전히 힘에 부친다. 당일 방송 4시간 전까지 촬영한 적도 있다. 송승헌은 "드라마 제작환경이 예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조금씩 지쳐갈 때 가장 힘이 된 사람은 흥선대원군 역의 이범수였다. "악조건 속에서도 해내야 하는 게 배우의 숙명 아니냐"고 흘리듯 던진 얘기에 정신이 번쩍 났다. 송승헌이 연기력 논란에 마음을 쓸 때도 이범수는 그를 격려했다. "20~30대 배우가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냐. 연기엔 연륜이 담기는 거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다만 얼마나 노력해서 그 시간을 줄이느냐가 문제다"라고….
"10년 전 영화 '일단 뛰어'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지만, 범수 선배의 내공은 정말 대단해요. 예전과는 다른 카리스마도 있으시고요. 저보다 조금 늦게 캐스팅됐는데,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신명나게 놀아보자'고 답장을 주셨어요. 배우로서 이런 자세는 꼭 배우고 싶어요."
이범수에게 힘을 얻었다면 김재중에게선 자극을 받았다. 송승헌은 "재중이가 연기자로서 꿈이 크더라"며 "열정과 자세에 놀랐다"고 칭찬했다. 데뷔 17년차임에도 한없이 겸손한 그의 말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한류가 거품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닥터 진'은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드라마도 시즌2까지 제작돼 크게 히트했다. 송승헌은 일본에서 한국판 '닥터 진'을 선보인다. 10월 방영을 앞두고 프로모션도 가질 계획이다. '가을동화'로 한류의 포문을 연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한류의 중심에 있다. "한류가 굉장히 큰 기회인데 정작 우리 내부에선 거품이라며 부정적인 얘기를 하더라고요. 불과 5~6년 전만 해도 드라마가 한국에서 소비되고 끝났지만 이젠 전 세계로 뻗어나가잖아요. 저도 어릴 때 할리우드와 홍콩의 영화를 보면서 열광했어요. 이젠 한류가 그 역할을 하고 있죠. 문화가 정말 중요합니다. 한류로 인해 한국을 알게 됐다는 팬들을 보면서 저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사극에 자신감이 붙은 송승헌은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할 작정이다.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액션을 버무린 정통사극을 검토 중이다. "연기자로서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고 또 한번 각오를 다진다. 그럼 결혼은 대체 언제 하려고? "요즘 친구들의 아이나 조카를 보면 너무 귀여워요. 부럽기도 하고요. 결혼할 때가 되긴 했죠. 그런데 남 얘기처럼 느껴지는 걸 보면,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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