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정말 쉬운 것으로만 알았죠. 그런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한때 '괴물'의 주식은 '이닝 수'였고, 부식은 '승리'였었다. 마운드에 나오기만 하면 가볍게 7~8이닝을 소화해냈다.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늘 먹는 간식이었다. 2010년 단일시즌에 23번, 2009시즌까지 합쳐 총 29번의 연속 퀄리티스타트 달성은 비공인 세계 신기록이었다. 데뷔 첫 해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한화 괴물투수 류현진은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승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네. 쉽구만 뭐'. 다른 투수들이 들으면 억장이 무너질 만한 소리지만, 류현진은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최고'였기 때문이다.
고난의 길, 마음은 단단해졌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그렇게 쉬운 것만 같았던 '승리'가 자꾸만 달아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류현진은 '이닝이터'이자 '퀄리티스타트 콜렉터'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야구에서 승리투수가 된다는 것은 결코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9회까지 완투를 해도 안 되는 날은 안 된다. 스스로의 잘못이든, 동료의 실수든 어쨌든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류현진은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됐다.
올해 들어서는 이런 추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팀 전력이 워낙 약해서 타선은 점수를 지원해주지 못했고, 불펜은 승리를 너무나 쉽게 날려먹었다. 그러면서 류현진도 조금씩 지친 모습을 보였다. 올 시즌 구위가 이전만 못하다는 자존심 상하는 소리도 들었다. 8월 31일 광주 KIA전을 앞두고 류현진의 올 시즌 성적은 21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3.20에 5승8패가 전부였다. 그나마 마지막 자존심인 탈삼진 부문에서는 1위를 지키고 있었으나 여러모로 '류현진답지 않은' 성적이다.
이로 인해 데뷔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시즌 두 자릿 수 승리를 기록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론마저 나왔다. 류현진은 "비로소 '이긴다는 게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의 탓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내가 위기에서 막아야 할 순간에 못 막았기 때문에 진 것이었죠". 그라운드에서 늘 싱글거리면서 경기 전에는 동료들과 장난을 치곤 하던 천진난만하던 '괴물'은 실패와 고난을 통해 한층 단단한 발톱과 심장을 갖게됐다.
내 목표는 여전히 11승!
고난의 끝에는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류현진은 33일만에 시즌 6승(8패)째를 수확했다. 31일 광주 KIA전에 선발로 나온 류현진은 8이닝 동안 3안타 2볼넷 4삼진으로 무실점을 기록한 끝에 팀의 3대0 승리를 이끌어냈다. 지난 7월 29일 광주 KIA전 이후 33일 만의 승리였다. 그 사이 류현진은 4회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 2경기는 '퀄리티스타트 +(선발 7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달성하며 에이스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하지만 얻은 소득이라고는 고작 3패 뿐이었다. 4승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늘 그렇듯 타선과 불펜이 도와주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미 고난의 시간을 수없이 경험했던 류현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동료를 믿고 마운드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이날 승리는 류현진의 호투도 있었지만, 팀 동료들의 집중력이 큰 힘을 보탰다. 타선은 모처럼 8안타로 3점을 뽑아줬고, 9회말 무사 1루에 나온 마무리 송창식은 1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지켜줬다.
류현진은 "힘들게 얻은 승리라서 그런지 더 기쁜 것 같다"면서 "이렇게 승리하기가 어려운데, 그간은 어떻게 이겼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오늘 승리로 올 시즌 두 자릿수 승리 목표를 다시 이어가겠다. 5번 정도 나설 것 같은데 다 이겨서 11승을 채우고 싶다"며 싱긋 웃었다. 고난을 이겨내고 성취를 거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건강한 미소였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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