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헌아, 엔트리 등록될 준비해야겠다."
두산 민병헌은 전역 사흘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두산 매니저였다. 휴가 후 부대 복귀를 준비중이던 그는 갑작스런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당연히 선수 등록은 내년에, 올 가을에는 미야자키 교육리그에나 갈 줄 알았다. 이유를 물었다. 매니저는 무거운 목소리로 "여러 명이 다쳤다. 수빈이는 수술을 받을 것 같다"고 했다.
민병헌은 아직 두산에서 훈련을 소화한 지 5일 밖에 되지 않았다. 휴가 때 이틀 간 팀 훈련에 함께 했고, 1군 엔트리에 등록된 5일부터 3일간 함께 훈련한 게 전부다. 아직까지 모든 게 낯설다. 민병헌은 "조그마한 벽제구장에 있다가 갑자기 큰 잠실구장을 보니 분위기부터가 이상하다. 여긴 아무리 쳐도 안 넘어갈 것 같다"며 웃었다.
전역 후 갑작스런 포스트시즌 엔트리 합류. 부상자 속출만 아니었다면, 굳이 민병헌이 선택될 이유는 없었다. 두산은 수준급 외야 자원인 민병헌을 등록시키면서 시즌 뒤 보호선수 명단을 짤 때 한 자리를 더 손해보게 됐다. 하지만 민병헌은 두산 선수단에 없는 '경험'을 갖고 있는 선수다.
일단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 외야진은 김현수-이종욱-임재철로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민병헌 김재환은 경기 중 투입을 기다릴 전망이다.
지난 3일 전역한 민병헌은 복귀 후 시즌 마지막 2경기에 나섰다. 성적은 7타수 1안타. 2군에서 타율 3할4푼2리를 치고 사이클링히트도 기록하는 등 펄펄 날았지만, 아직 1군 경기는 낯설기만 하다.
특히 야간경기에 적응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민병헌은 오랜만에 치르는 야간경기에 대해 "직구와 변화구가 분간이 안되는 정도가 아니다. 그냥 하얀 게 보이니까 친 것 같다"며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캠프 때부터 준비한 것보다는 분명 준비가 덜 된 상태"라고 밝혔다.
실제로 낮경기를 주로 치르던 2군 선수가 1군에 올라왔을 때 가장 고전하는 게 타석에서 달리 보이는 공이다. 야간경기의 경우 볼이 좀더 빠르게 느껴진다. 일사광선과 다른 야간조명은 시야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어두운 상황에서 오히려 공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는 이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야간경기에 적응된 선수들 얘기다. 관중이 거의 없는 2군 경기와 달리 야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 역시 큰 영향을 준다.
그래도 민병헌은 군복무 전 포스트시즌을 세 번이나 경험했다. 2007년과 2009년, 2010년 두산 가을잔치 멤버였다. 프로 데뷔 2년차였던 2007년에는 주전급으로 뛰기도 했다. 포스트시즌 통산 타율은 2할2푼(41타수 9안타). 성적 탓에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며 손사래를 치긴 했지만, 다른 두산 선수들이 갖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다.
김진욱 감독 역시 심사숙고 끝에 민병헌의 1군 등록을 결정했다. 큰 손해가 따르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김 감독은 민병헌에게 "미쳐줘라"고 짧게 주문했다. 쉽지 않겠지만, 몸 속에 남아 있는 가을야구의 기억을 빠른 시간 내에 끄집어내주길 원하고 있다. 2군에서 사이클링히트를 치는 등 경찰청에서 한 단계 성장한 것도 확실하다.
민병헌은 "이겨야 되니까, 이기려면 잘 해야 한다. 하지만 잘 하려고 하면 부담감만 생긴다. 최대한 부담 없이 뛰겠다. 어느 역할이 주어지든, 최대한 빠진 선수들 몫까지 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2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과 함께 2년 만에 가을잔치로 돌아온 그가 김 감독의 바람대로 '미쳐줄'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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