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 올해, FA(자유계약선수)로 팀을 옮기는 선수들이 하나 같이 빼놓지 않은 말이 있다. "▲▲구단이 마음을 움직였다."
선수가 FA 선언을 했을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선수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익숙한 구단, 정든 구단을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건의 미세한 차이로 팀을 떠난다. 계약기간이나 보장금액, 심지어는 옵션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기도 한다.
이런 이들에겐 우선협상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팀의 러브콜이 쏟아진다. 자연스레 전 소속구단이 못해준 대우를 보장한다. '마음을 움직였다'는 건 그런 것이다. 아주 작은 차이에서 출발한다. 그 차이는 '돈'이다.
삼성의 평가, '수요 폭발' 시장 상황 고려하지 않았다
삼성과 정현욱 역시 계약기간을 두고 줄다리기를 계속 했다. 삼성 입장에선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36살인 정현욱에게 4년 계약을 보장하기 힘들었다. 다시 1군에서 활약한 2008년부터 '국민노예'로 불리며 마당쇠 역할을 한 그이지만, 그간의 팀 공헌도 보다는 미래 가치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수 입장은 다르다. 선수들에게 FA계약은 일종의 '적금'과도 같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대가를 한 번에 돌려받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계약 후 성적 역시 4년 뒤 FA 자격을 재취득하는 데 필요한 성적일 뿐이다. 이처럼 구단과 선수는 철저히 비즈니스적 마인드로 봐야 한다.
삼성이 지금껏 내부 FA단속에 성공했던 이유는 합당한 가치 평가였다. 냉정하게 시장에서 받을 평가를 고려했다. 선수와 구단 모두 불만없이 협상을 마친 이유다. 시장에 나가봐야 비슷한 조건을 제시받을 뿐이다. 굳이 팀을 옮기는 모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LG 측 고위관계자는 정현욱 영입 성공에 대해 '의외의 수확'이라고 평했다. 삼성이기에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삼성이 정현욱을 붙잡는데 너무나 자신을 보였기에 불가능할 줄 알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바뀌었다. 데뷔 17년차에 늦깎이 FA가 된 정현욱은 순수 불펜투수 중 최고액인 4년 28억6000만원에 사인했다. 이미 지난해 이택근이 50억원에 계약하면서 시장은 '과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주찬도 50억원을 받았다. 삼성의 평가에는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는 넘치는, 현 상황이 고려되지 않았다.
정현욱 이탈로 흔들리는 선수들, 내년과 내후년엔?
문제는 정현욱의 옛 동료들이다. 정현욱은 삼성 마운드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다. 최고참으로서 중심을 잡으면서 보이는 성적 이상의 역할을 했다.
때문에 남은 삼성 투수들의 마음은 강하게 흔들리고 있다. 모두들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한 정현욱이 4년 뒤에도 충분히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정현욱의 LG행 이후 "나한테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닐까"라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삼성은 강력한 마운드를 바탕으로 최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투수 왕국'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삼성 마운드의 주축선수들은 모두 30대에 접어들었다. 언제 노쇠화 기미를 보일지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정현욱을 필두로 내년부터 줄줄이 FA가 쏟아진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른다면, 내년엔 오승환과 장원삼이 시장에 나온다. 그리고 2년 뒤엔 핵심 필승조인 안지만 권오준 권 혁이 모두 FA 자격을 얻는다. 가장 안정적인 선발투수 윤성환도 대상자다. 돌아온 에이스 배영수도 자격을 재취득할 수 있다.
1군 투수진의 절반 정도 되는 수치다. 물론 삼성이 이들을 모두 잃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탈자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면, 8개 구단의 거센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왕좌를 뺏길 위험성도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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