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시즌 한국시리즈 MVP 이승엽(36·삼성)이 방망이 대신 골프채를 잡았다. 18홀이 그림 처럼 펼쳐진 마운틴코스와 레이크코스를 어린아이 처럼 신나게 걷고 뛰었다. 아직 골프 실력은 초보. 샷이 벙커에 자주 빠졌다.
이승엽이 골프채를 처음 잡은 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초반 골프를 시작했다. 따로 레슨을 받지 않았다. 그냥 선배들따라 마구잡이로 쳤다. 그러다 일본 무대에 진출했다. 처음엔 야구할 때 처럼 왼손잡이용 클럽을 잡고 휘둘렀다. 그러다 4년전 오른손잡이 클럽으로 바꿨다. 골프를 하면서 왼쪽 어깨가 야구할때 보다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경기력에 지장을 줄까봐 스스로 결정했다. 골프와 야구는 스윙 궤도가 달랐다. 부상의 가능성도 걱정이 됐다.
이승엽은 골프가 참 재미있는 운동이라고 했다. 그는 비시즌에 평균 10번 정도 친한 동료 또는 친지들과 라운딩을 하는 편이다. 경기가 열리는 시즌 중에는 어깨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절대 골프를 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3일 경기도 이천 피닉스 스프링스 컨트리클럽에서 벌어진 제31회 야구인골프대회(한국야구위원회·스포츠조선 공동주최, 후원 삼성 라이온즈)에 처음 참가했다. 2004년 일본 진출 이후 8년 동안 국내 무대를 떠나 있었다. 그 이전 삼성 시절에는 나이가 어렸고, 또 골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아 드러내놓고 골프를 치기도 부담스러웠다.
이승엽은 삼성 주장 진갑용(38) 두산의 동갑내기 친구 임재철(36) 등과 한 조를 이뤘다. 진갑용은 구력이 10년 이상으로 이승엽 보다 라운딩 경험이 풍부했다. 임재철은 골프를 시작한 지 이제 2년 남짓. 이승엽은 지난해 어깨가 아파 거의 골프채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2012시즌을 마치고 이번 대회를 앞두고 5번 라운딩을 했다. 어깨 통증이 남아 있어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래서 출전을 고사할 수도 있었지만 우승팀의 대표 얼굴이라 야구인들이 골프로 친목을 다지는 잔치에 빠질 수 없었다.
이승엽의 골프 실력은 야구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고 보는 게 맞다. 그의 방망이 스윙은 물흐르듯 부드럽다. 하지만 골프 스윙은 팔로 스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승엽은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꾸고 나서 어깨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타구에 충분히 힘이 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라운딩 초반 티샷이 흔들렸다. 골프채 헤드로 공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했다. 드라이브샷이 벙커에 꽂히기 일쑤였다. 벙커 탈출은 잘 했다. 레이크코스 6번홀에서 친 드라이브샷은 워터 해저드에 빠졌다. 7번홀에서 친 티샷은 야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세컨드 샷을 치기 위해 잠시나마 등산을 했다. 살을 애는 듯한 차가운 바람에 체감 온도는 영하로 떨어져 몸이 풀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더블 보기, 트리플 보기 등으로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그는 매홀 "골프, 어렵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승엽의 최대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210야드 정도였다.
하지만 이승엽은 후반으로 가면서 안정을 찾았다. 그늘집에서 커피 등으로 긴장을 푼게 도움이 됐다. 서서히 드라이브샷의 그린 적중률이 좋아졌고 스코어도 줄여나갔다.
이승엽의 평균 18홀 스코어는 100타 안팎이다. 그는 라운딩 전 캐디에게 정확한 스코어 계산을 부탁했다. 실제로 자신의 실력을 알고 싶어 했다. 프로가 아닌 일반인들의 골프에선 규칙에 어긋나지만 조금씩 서로 봐주고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승엽의 이날 최종 스코어는 78타였다. 대회 도중 비가 내려 18홀 중 4개홀을 못하고 라운딩을 끝냈다. 그는 "매우 즐거웠다. 조금만 더 잘 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천=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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