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비활동기간이다. 단체훈련은 못한다. 대신 자율훈련을 한다. 팀 동계훈련은 2013년 1월 7일쯤 일제히 재개된다. 약 한 달 동안은 모든게 선수 개인에게 달렸다. 시간을 허투로 보내는 선수가 있다. 반대로 시간을 깨알같이 쪼개서 알차게 보내는 선수도 있다. 지금은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단체훈련 전 한 달의 시간이 새로운 1년 농사의 시작이다.
롯데 간판타자로 성장한 손아섭(24)의 시간표는 '주경야독'의 교과서 같다. 낮에는 주업인 야구를 잘 하기 위해 몸을 만든다. 그리고 밤 시간을 이용해 부족했던 영어 공부를 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정도까지 사직구장 또는 경성대에서 러닝과 타격 기술훈련을 한다. 방망이 감을 유지하기 위해 T배팅도 한다. 그후 장소를 부산 해운대 피트니스센터로 옮겨 체력훈련을 한다.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순발력 근력 유연성 등을 끌어올린다. 손아섭은 2013시즌은 체중을 3~4㎏ 정도 줄여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식단조절도 하고 있다. 올해 몸무게는 86~90㎏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 줄이기로 했다.
그는 27일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추신수(신시내티) 대신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손아섭은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급해졌다. 조금 느슨해졌던 마음가짐을 다잡고 좀더 빨리 컨디션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손아섭은 오후 7시30분부터 약 1시간 남짓 원어민 강사를 만나 영어 과외를 받고 있다. 11월초부터 시작,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부산 서면 소재 영어학원을 다니다 일정에 제약이 많아 개인 과외로 돌렸다. 스토브리그에 영어 공부를 하는 건 처음이다.
부산 출신인 손아섭은 부산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7년 신인 드래프트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를 굳히는데 4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타율 3할 이상을 쳤다. 올해는 최다 안타 1위(158개), 타율 3위(0.314)를 기록, 2년 연속 골든글러브(외야수)를 받았다.
영어를 제대로 배워준 적이 없었다. 야구에 푹 빠져 살았다. 손아섭은 외국인 선수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못해도 너무 못하는 영어가 걸림돌이 됐다. 손아섭은 말주변이 좋은 선수다. 말을 조리있게 잘 풀어내는 편이다. 그런데 영어는 인사조차 힘들었다. 그는 "이렇게 무식하게 영어 한마디 못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영어로 인사는 해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손아섭은 최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수상 후 소감을 말하는 과정에서 준비했던 '해피 뉴이어 앤드 엔조이 유어 타임' 중 '앤드 엔조이 유어 타임'을 끝내 말하지 못했다. 차안에서 수 백번 이상 혼자 연습했지만 결국 실전에서 내뱉지 못했다.
이건 비단 손아섭 만의 고통은 아닐 것이다. 현재 프로 9개 구단 선수 중 초-중-고(대학)를 거치면서 영어 뿐 아니라 학교 정규 수업을 제대로 받고 졸업한 선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현재 다수의 선수들이 해외 전지 훈련 차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의사전달이 잘 되지 않아 도움이 필요하다. 최근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도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 모든 과정에서 통역의 도움을 받았다.
비시즌 동안 영어 등 외국어 공부에 손을 대는 선수가 제법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익숙하지 않은 걸 배운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또 낮에는 운동으로 땀을 흘린 후 밤에 책상 앞에 앉는게 고역이다. 술 약속의 유혹도 피하기 쉽지 않다. 중도포기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도 하나라도 배워두는 게 결국 남는다. 달콤했던 자율훈련의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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