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고집이다. 최근 200회를 돌파한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얘기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 지난 2009년 4월 첫 전파를 타기 시작해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가요계는 아이돌 음악 천지다. '음악중심', '뮤직뱅크', '인기가요' 등의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 뿐이다. 물론 아이돌 가수들의 팬들도 많지만,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음악팬들도 많은 것이 사실.
그런 의미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역할이 돋보인다. 비교적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TV에 얼굴을 비출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는 것.
물론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아이돌 가수들은 절대 안 돼"라고 문을 닫아놓은 것은 아니다. "아이돌이냐 아니냐를 떠나 지금 가장 핫한 가수들은 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행을 맡고 있는 유희열의 얘기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누구나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고집이 드러난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고 있는 최재형 PD는 최근 열린 200회 특집 기자간담회에서 "섭외의 기본적인 원칙은 라이브를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물론 실수로 라이브를 잘 못하는 팀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한 번 출연한 이후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아이돌이라고 해서 못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음악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똑 부러지는 원칙이다. "기계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음악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유희열의 생각 역시 같다.
이런 맥락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지향하는 것은 '문턱은 높지 않지만 만만해 보이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비교적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전파를 탈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과 다른 '뭔가'가 있어서다. 그리고 그 '뭔가'는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보여주는 장르적 다양성이나 음악적 완성도와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현재 공중파에서 방송되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아티스트가 출연해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공중파 무대에 서는 것 역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들다.
한편 지난 23일 방송된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200회 특집 방송엔 이효리, 윤도현, 박정현, 장기하가 자신이 평소 팬으로서 좋아했던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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