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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대통령 손잡은 심판, 심판은 무슨 말을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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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도 몰랐다.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통보받은 대통령의 시구. 그 현장에 함께한 주심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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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두산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27일 잠실구장. 보통이라면 경기 전 미리 발표되는 이날의 시구자가 경기 시작 전까지 발표되지 않았다. 'VIP'의 시구를 의미하는 순간이었다. 보안상 미리 시구자를 밝힐 수 없었다.

그라운드에 어울리지 않은 사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경기 전 미리 구장 동선을 분주히 체크했다. 경호상 당연히 필요한 절차. 이렇게 잠실구장엔 조금씩 대통령의 시구가 임박했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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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실은 어땠을까. 이날 심판진이 대통령의 시구를 통보받은 건 경기 시작 1시간 전이다. 오더를 교환할 때쯤, 한국야구위원회(KBO) 직원이 '그 분이 오신다'고 말했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경기 전 동선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구심은 21년 경력의 베테랑 나광남 심판위원회 팀장이었다. 경력만 놓고 보면 KBO 심판위원 중 네번째, 산전수전 다 겪은 그였다. 하지만 그도 대통령의 시구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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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팀장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막전에 시구를 하려다 비가 많이 와서 취소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주심으로 준비하다 무산된 적은 있었지만, 대통령의 시구 현장에 있었던 건 처음"이라며 "미리 언질이 없어 뜻밖의 시구였다. 다른 게 있겠나.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시구 당시 분위기는 어땠을까. 물론 심판들과 비슷한 복장을 한 5명의 경호원들이 그라운드에 나가 근접 경호를 펼치긴 했지만, 삼엄한 경비 체제가 펼쳐지던 과거에 비하면 분위기는 많이 풀어졌다. 프로 원년엔 심판 복장 뿐만 아니라, 선수 유니폼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잠실구장 마운드에 올랐다.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2013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27일 잠실구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해 시구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구를 마치자 나광남 주심이 박수를 치고 있다.잠실=정재근기자 cjg@sportschosun.com/2013.10.27/
나 팀장은 "시대가 달라진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완전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과거에 비해 무겁지 않았다. 그래서 크게 긴장은 안 됐다"며 웃었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 뒤엔 나 팀장과 심판과 비슷한 복장을 한 경호원들 뿐이었다. 안전을 위해 평소와 달리 모든 선수단과 다른 심판위원들을 철수시켰기 때문이었다. 시구자와 포수, 타자 외에 다른 인물은 나 팀장과 경호원들 뿐이었다. 나 팀장은 "그래도 많이 부담되진 않았다. 편하게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박 대통령은 글러브를 착용할 때 나 팀장의 도움을 받았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나 팀장에게 "글러브 어떻게 껴요?"라고 물어봤다고. 나 팀장은 글러브 착용을 도우며 박 대통령의 왼 손목을 살짝 잡았다.

이 순간 포착된 사진은 포털사이트에서 화제가 됐다. 나 팀장은 "조심스럽게 했는데 사진이 좀 민망하게 나왔다. 손을 잡았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래도 나름 신경 쓴 부분이었다. 다른 특별한 말씀은 없었다"고 했다.

대통령의 시구를 경험했던 선배들에게 들었던 에피소드는 없을까. 나 팀장은 "82년 프로 원년 개막전 시구 때 김광철 전 심판위원장께서 주심을 맡았다. 당시 플레이볼을 하는 동작에서 총을 쏘는 줄 알고 난리가 났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내가 그런 긴장되는 순간을 경험할 줄은 몰랐다"고 답했다.

어쨌든 시구는 시구, 경기는 경기였다. 나 팀장은 "대통령은 대통령이시고, 난 내가 할 일을 해야 했다. 금세 마음을 진정시키고 경기에 임했다"며 미소지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27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 삼성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시구에 나선 박근혜 대통형이 나광남 주심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잠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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