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도 불문율이란 게 있다. 야구의 경우 홈런을 친 타자는 투수를 향해 과도한 세리머니를 펼쳐선 안된다. 또 주자는 점수차가 큰 경기 후반 도루를 해선 안된다. 자신의 기록을 위한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문율을 어겼을때는 어김없이 보복(?)이 들어간다. 해당 선수가 다음 타석에 들어오면 곧바로 무시무시한 위협구가 날아간다.
배구는 팀 플레이로 펼쳐지는 구기종목 중 가장 신사적인 스포츠다. 네트를 가운데 두기 때문에 상대팀 선수와 몸이 부딪히는 일이 없다. 그러나 배구에서도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상대 선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취하는 세리머니다. 배구 경기를 유심히 보면 스파이크를 성공했다거나 블로킹으로 득점했을때 대부분의 선수들은 고개를 돌리고, 네트를 등진 채 세리머니를 취한다. 이밖에 상대팀 응원석을 향해 과도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것도 금기시 한다.
그런데 지난 5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전통의 라이벌'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경기서 불문율 때문에 생긴 사건(?)이 있었다.
2세트 접전 상황에서 현대캐피탈 외국인 선수 아가메즈가 오픈 공격을 시도했다. 이때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레오가 1인 단독 블로킹으로 막아냈다. 레오 입장에선 정말 짜릿했을 것이다. 순간 레오는 스파이크 이후 땅에 쓰러진 아가메즈를 내려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이에 아가메즈는 레오를 향해 불만을 이야기했다. 이에 레오도 맞받아쳤다. 네트를 넘어가지 않았지만 자칫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 뻔 했다. 주심은 두 선수를 불러 중재에 나섰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 삼성화재 고희진이 또다시 블로킹 성공 이후 현대캐피탈 선수들을 향해 세리머니를 잠깐 보였다. 현대캐피탈 권영민은 주심에게 이 부분을 강하게 어필했다.
이 같은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지자 아가메즈는 공격을 성공시킨 뒤 네트를 등지고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킹콩 세리머니'를 펼쳐 보였다. 이 세리머니는 고희진의 특허품. 자칫 아가메즈가 고희진을 비꼬는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경기 후 아가메즈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아가메즈는 "나는 레오를 존경한다.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도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가끔 자신이 한국 리그에서 최고라는 행동과 말을 할 때가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그는 "레오가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좋은 선수라면 상대를 조금 더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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