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이 끝난 뒤 그는 양말을 갈아 신었다. 이미 양말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축구화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공중볼 경합 도중에 상대 수비수에게 발을 밟혔다. 내색하지 않았다. 전북 동료들은 피를 닦아내는 그를 지켜만 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었다.
35세의 노장인 그가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그라운드를 끝까지 지켰다. 부상을 안고도 공수 진영을 활발히 오가자 동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뛰고 또 뛰었다. 돌아온 승리의 쾌감은 더 컸다. 노장의 투혼이 피로 누적과 오심으로 인해 주춤하던 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라이언 킹' 이동국의 '핏빛 투혼'이 잠자던 전북 현대의 승리 의지를 다시 깨웠다. 전북이 2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디펜딩 챔피언' 광저우 헝다(중국)와의 조별리그 G조 4차전에서 1대0으로 승리를 거뒀다. 전북은 이날 승리로 G조 2위를 굳건히 지키며 16강행에 한발 더 다가섰다. 지난달 18일 광저우 원정에서 당한 1대3의 패배를 되갚아줬다. 당시 정인환의 헤딩골을 심판의 오심으로 도둑맞은 전북은 광저우전 패배로 부진의 늪에 빠졌다. 광저우전 이후 K-리그 클래식 3경기에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1승1무1패에 그쳤다. 그러나 전북은 광저우전으로 떨어진 팀 분위기를 광저우전에서 끌어 올리며 상승세의 발판을 마련했다.
수적 열세마저 승리에 대한 의지로 극복했다. 전북은 0-0으로 맞선 후반 21분 정 혁이 퇴장당해 10명으로 25분여를 버텼다. 후반 31분 터진 레오나르도의 시원한 오른발 발리 슈팅이 결승골이 됐다. 그 승리를 이끈 숨은 공신은 팀의 주장인 이동국, 그의 투혼이었다.
이동국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경기 내내 공중볼 경합에서 볼을 따내며 공격을 이끌었다. 상대 수비의 거친 파울도 모두 몸으로 받아냈다. 골대를 맞히는 불운도 겪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이동국은 믹스트존을 빠져나오며 발을 절룩거렸다. 전반에 다쳤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통증을 호소했다. 이동국은 광저우전의 중요도를 잘 알고 있었다. 전북의 공격 전술은 이동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빠진다면 팀이 입을 타격은 불을 보듯 뻔했다. 팀을 위해, 또 동료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통증을 참고 끝까지 뛰었다. 그의 '핏빛 투혼'은 값진 승리로 돌아왔다.
결국 이동국은 3일 병원에서 오른쪽 새끼 발가락 부근을 세 바늘 꿰맸다. 킥을 하는 오른발이라 상처가 아물 때까지 안정을 취해야 한다.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 클래식 6라운드 FC서울전 출전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동국은 "발등이 뚫린것처럼 피가 흘러내렸다. 축구를 하면서 이런 부상은 처음이다"라며 부상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부상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경기를 승리로 선물 받았으니 괜찮다."
후반 36분 상대 선수에 발목을 밟히며 교체 아웃됐던 측면 수비수 이재명의 부상은 더 심각하다. 검진결과 오른쪽 발목 외측 인대가 부분 파열됐다. 전북 관계자는 "진단 결과 2~3주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한 달 가까이 경기에 나설 수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광저우전은 말그대로 혈전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이 보여준 '부상 투혼'은 전북의 승리 의지 및 팀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려 줄 기폭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동국의 부상은 팀을 위한 '영광의 상처'였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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