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저도 배트 좀 주세요."
KIA 타이거즈 선동열 감독은 통이 크다. 2012년 KIA에 부임한 이후 종종 선수들에게 자비로 배트를 선물해왔다. 시기는 일정치 않다. 스프링캠프 때나 시범경기, 또는 시즌 개막 후에도 꽤 여러번 '배트 보따리'를 풀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에 인연을 만든 지인이 한국에 올 때마다 고급 배트를 수십 자루씩 공수해왔다. 자루당 약 20만원에 해당하는 꽤 고가의 배트다. 선 감독은 이걸 선수들에게 주며 격려와 함께 선전을 부탁하곤 했다. 현재 KIA 선수들 대부분은 최소 한 두 차례 정도씩 선 감독에게 배트 선물을 받아봤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도 있다. 시즌 중 트레이드로 팀을 옮겼거나 아니면 매우 오랜만에 1군에 온 선수들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포수 이성우였다. 이성우는 지난 12일에 백용환이 2군으로 가면서 처음 1군에 올라왔다. 이성우는 이후 팀의 주전급 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복귀 첫 경기인 광주 한화 이글스전에 주전으로 마스크를 쓰는 등 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수비력은 현재 1군 포수로 있는 차일목보다 낫다는 평가다.
이런 이성우가 24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SK 와이번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돌연 덕아웃에 앉아 선수들을 지켜보던 선 감독의 앞으로 다가왔다. '차렷'자세로 우뚝 선 이성우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한 마디 했다. "감독님, 저도 배트 좀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꼭 한자루 주세요."
선 감독은 이성우의 이런 돌발 발언에 껄껄 웃으며 "야, 그러고는 싶은데 이제 남은 게 없어. 다음 번에 너한테 제일 먼저 줄테니 이번에는 좀 참아라." 이성우는 그제야 씩 웃으며 그라운드로 연습하러 뛰어나갔다.
이성우가 갑자기 선 감독에게 배트를 달라고 한 이유는 이날 경기에 앞서 선 감독이 몇 자루의 배트를 풀었기 때문. 선 감독은 "아까 감독실에 보니까 배트가 몇 자루 남았길래 타격 코치에게 알아서 선수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아마 이성우는 못 받았아서 나에게 달라고 왔나보다"라며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사실 확실한 1군 주전이 아닌 위치에 있는 이성우가 선 감독에게 직접 와서 무언가를 부탁하는 장면은 매우 어색하다. 그러나 선 감독은 올해부터 선수들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이성우처럼 넉살좋게 다가와 말을 걸면 한층 더 친근하게 대답을 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선수들 역시 "감독님과 말을 하는 것이 한결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이성우도 원체 넉살이 좋긴 하지만, 이런 선 감독의 변화를 알고 있었기에 와서 애교섞인 부탁을 한 것이다. 물론 소득은 있다. 선 감독은 "이제 곧 지인이 한국으로 배트를 가져다 준다고 했다. 그때는 이성우부터 좀 챙겨줘야겠다"고 말했다. 일본산 배트가 선수들과 선 감독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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