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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K-리그 인생은 슈퍼매치와 함께 시작됐다. 지난해 11년 만에 귀향했다. 2002년 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달성한 후 둥지를 해외로 옮겼다. 지난해 초 기로에 섰다. 개인 사정으로 방황했다. 사실상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라운드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못했다. 서울이 손을 내밀었고, K-리그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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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은 달랐다.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수원팬들은 차두리가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보냈다. 그도 이유를 몰랐다. "내가 왜 야유를 받아야 하나." 억울해 했다. 그리고 "아버지(차범근 감독)도 여기에서 감독 생활을 하셨다. 또 내가 이 팀에서 유럽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온 것도 아니다. 상대 팬들이 저라는 선수를 의식한 것 같다. 유럽에서 안 받아본 야유를 한국에서 받았는데 이것도 축구의 하나"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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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이었다. 활력소이자 '복덩이'였다. '해피 바이러스'는 팀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차두리는 지난해 데뷔전을 포함해 이날까지 5차례의 슈퍼매치에서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다. 아픈 징크스를 모두 날렸다. 차두리는 8월 3일 지긋지긋한 9경기 연속 무승(2무7패)의 사슬을 끊는 데 일조했다. 10월 9일 원정에서 0대2로 패했지만 11월 2일 안방에서 다시 2대1로 승리하는데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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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에선 투혼, 또 투혼이었다. 반전의 도화선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자랑했다. 매주 두 경기씩을 치르는 살인적인 일정이지만 '차미네이터'는 세월도 꺾지 못했다. 수비면 수비, 역습이면 역습, 묵묵히 땀을 쏟아냈다. 빛이었다. 서울이 수원을 1대0으로 꺾었다. 클래식 5경기 연속 무승(2무3패) 사슬을 끊었다. 수원 원정 8경기 연속 무승(1무7패)의 늪에서도 탈출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