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느린 공을 던지는 투수는 두산 베어스의 유희관이다. 직구 최고 구속이 135㎞ 정도다. 유희관은 이 공으로 지난해 10승에 이어 올해 11승을 거두며 '느림의 미학'을 전파하고 있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홍콩 투수들도 느림의 미학을 보여줬다. 그런데 느려도 너무 느렸다. 25일 B조 예선 한국전에 나선 홍콩의 선발 투수 롱카호삼은 직구 구속이 115㎞ , 커브는 80㎞ 정도였다. 태국과 대만 선발 투수가 한국을 상대로 1이닝을 버티지 못했는데, 롱카호삼은 6실점을 했지만 3이닝을 버텼다. 두번째 투수 웡호펑은 더 느렸다. 직구 최고구속이 105㎞에 불과했다. 그는 한국선수들이 보지 못한 시속 78㎞ 변화구를 던졌다.
신기하게도 그 느린 공이 오히려 통했다. 한국 타자들은 느린 공에 정타를 때려내지 못했다. 7회초 마지막으로 나온 리윙싱이 131㎞의 가장 빠른 공을 던졌는데 오히려 빠른 공이 제구가 안돼 볼넷을 남발했고, 밀어내기 볼넷만 2개를 내줬다.
140㎞ 이상의 빠른 공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타자들은 너무나 느린 공에 빠른 배트 스피드가 맞지 않았다.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 공이 오기까지 숫자를 셀 때 일반적인 투수의 공에 셋까지 센다면 이들의 공은 다섯, 여섯까지 세야 할 정도로 느렸다. 아무리 느리게 타이밍을 맞추려고 해도 타자들의 배트가 더 빨랐다.
게다가 대부분의 선수들이 큰 스윙으로 일관된 모습이었다. 찬스에서 희생플라이가 많이 나왔고 땅볼 타구보다는 뜬공이 많았다. 태국전과 대만전서 경기를 쉽게 끝내면서 홍콩전에 너무 방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표팀의 김현수는 이렇게 느린 공은 처음이라고 했다. 느린 공에도 2안타를 치는 등 타이밍을 잘 맞춘 김현수는 "내가 잘 친게 아니라 공이 맞아준 것 같다"며 "초등학교 때도 본 적이 없는 공이다"라고 했다. 김현수는 한술 더 떠 "100㎞의 공이 직구로 올 수 있는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마치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것 같다"며 홍콩 투수들의 느린공에 혀를 내둘렀다.
목동=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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