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덕분에 큰 경험을 했어요."
홈런은 타자에게는 짜릿한 쾌감이자만, 투수에게는 끔찍한 악몽이다. 다 이긴 경기를 홈런 한 방, 잘못 맞아서 뒤집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포스트시즌에는 홈런 하나로 팀의 운명이 바뀌곤 한다. 단기전에서의 '한 방'은 파괴력이 크다.
그래서 포스트시즌에 나선 투수라면 누구든 홈런 맞는 것을 꺼린다. 만약 홈런을 맞았다면? 다음날에도 좋은 표정으로 경기에 임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LG 트윈스에는 예외의 인물도 있다. 비록 홈런은 맞았지만, 배짱은 잃지 않은 인물. 홈런을 내줄 때를 돌아보며 '씨익~'하고 쓰디쓴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선수. 바로 젊은 우완 불펜투수 정찬헌(24)이다.
정찬헌은 웃었다. 20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NC다이노스를 상대로 플레이오프 2차전을 치르기에 앞서 투수 앞 땅볼 수비 훈련을 열심히 한 뒤 였다. 이날 훈련을 할 때 특별히 LG 양상문이 관심을 보였다. 정찬헌의 뒤에서 수비하는 동작을 유심히 살핀 양 감독은 농담을 건내며 편안한 훈련 분위기를 만들었다.
양 감독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수비 훈련을 마친 정찬헌은 라커룸으로 들어가며 "양 감독님이 수비 훈련 할 때 몇 개의 공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을 가지고 농담을 하셨다. 아마 제 기분을 배려해 일부러 더 이야기를 하셨을 수도 있다"면서 살짝 웃었다.
웃음에는 사실 여러가지 색깔과 의미가 있다. 정말 기쁘고 즐거워 손뼉을 치며 온몸으로 웃는 '박장대소'부터 괴로운 심정을 감추느라 애써 웃는 '쓴웃음'까지. 웃음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이 중에서 정찬헌의 웃음은 어느 정도는 '쓴웃음'쪽으로 쏠려있다. 1차전에서 홈런을 맞은 게 아쉽지만, 또 곰곰히 따져보면 그게 그리 괴로워할 만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찬헌은 지난 19일 1차전에서 팀이 13-3으로 크게 앞선 8회말 1사 1, 2루 때 나와 1이닝 동안 1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첫 안타가 9회말 선두타자 이호준의 홈런이었다.
정찬헌은 "팀이 이겼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 큰 기쁨 앞에서 내가 맞은 1점 홈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선배 투수들이나 코치님, 감독님도 홈런을 맞은 것에 대해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집중하게 되는 자극제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실 정찬헌은 이번 포스트시즌이 데뷔(2009 LG) 후 처음으로 겪는 가을잔치다.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한 지난해에는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불펜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가을잔치 대열에 합류했다.
이것만으로도 동기 부여는 확실하다. 정찬헌은 "첫 포스트시즌은 내게는 보너스나 마찬가지다. 기대를 안했는데 엔트리에 포함이 됐다"면서 "이번 가을에 팀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던지면 내년에는 더 자신감이 생기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찬헌이 홈런을 맞고나서도 풀죽지 않고 당당히 웃는 이유가 바로 이 말에 담겨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창원=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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