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 사는 김모씨(회사원·여)는 지난 9일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집 앞 롯데마트 고양점을 찾았다. 며칠 전 남편이 사온 롯데마트 PB상품(자체 브랜드 상품) '햇쌀한공기' 즉석밥을 반품하기 위해서였다. 먹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는데 붉은 색이 밥알에 번졌다. 한눈에 봐도 뭔가 잘못 됐다. 맞벌이 부부라 아이를 위해 가끔씩 즉석밥을 이용하는데 흔치 않은 경우였다.
롯데마트 고양점에 도착해서는 더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판매직원은 해당 제품이 문제가 있어 이날 전량 회수조치 됐다고만 했다.
롯데마트 '햇쌀한공기' 즉석밥은 지난 8월 6일 진공포장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판매 중단, 매장 철수, 자발적 리콜과 전량 환불조치가 이뤄졌다. 당시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훨씬 지난 시점에 같은 일이 반복됐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고양점 판매직원은 본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사실상 쉬쉬하며 조용히 넘기려는 모습이다.
김씨는 스포츠조선 소비자인사이트에 억울한 심경을 털어놨다.
"제품에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매장차원에서 회수조치가 또 있었다면 당연히 구매자들에게는 연락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식품이고 더군다나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제품인데 보상을 요구한 적 없어요. 홈페이지에 작은 공지라도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지난 8월 자체 리콜 뒤 또 문제 발생
롯데마트는 지난 8월 '햇쌀한공기' 즉석밥에서 여러 차례 진공 포장문제로 민원이 쏟아지자 자체 리콜을 했다. 6만개에 달하는 제품에 대해 환불조치가 이뤄졌다. 당시 마트차원의 자발적인 리콜에 대해 문제발생 뒤 사후처리가 괜찮았다는 호평이 있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돼 같은 문제가 생겼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생산 공장의 같은 라인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이 처리대상이 된다. 즉석밥을 만드는 생산 회사의 과오로 롯데마트는 큰 타격을 입었다. 두 번 실수가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롯데마트 본사 관계자는 "유통과정에 대해 정확한 실태조사를 해봐야겠지만 현재로선 해당 매장에서 예전 물량을 다 수거하지 않은 상태서 판매했을 가능성이 있고, 새로 만든 제품 중 일부에서 이상이 발견됐을 수 있다"며 "무조건적으로 매장에서 고객응대를 잘못 한 것이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해당 매장 점장을 통해서 해당 직원을 찾으려 해도 쉽지 않다. 송구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8월에 문제가 됐던 제품과 똑같은 제품이다. 9월말에 구입한 신용카드 영수증과 환불증도 모두 가지고 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제품을 모르고 팔았든,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든 말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하자 있는 제품을 모르고 먹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주장했다.
"대형마트가 PB상품 생산부터 유통까지 관리하고 책임져야"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의 자체 브랜드 상품의 매출 비중은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20~30% 선으로 파악되고 있다. 4개중 1개는 자체 기획, 생산한 제품이라는 얘기다. PB상품의 경쟁력 핵심은 싼 가격이다.
가격을 다운시키기 위해 단가를 끊임없이 내려야 하고, 이 과정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물건을 받는 중소기업의 마진은 쥐꼬리가 된다. 중소기업은 거의 원가에 가까운 납품요구지만 매출 때문에 거절 할 수 없다. 유통업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선 값싼 가격이 당장은 유리하겠지만 중소기업 브랜드들이 모두 사라지면 언젠간 선택의 폭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대형마트들은 눈에 잘 띄고, 잘 팔리는 매대에는 어김없이 PB상품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쥐어짜야 이윤을 남길 판이니 제품 결함, 식품 속 이물질 신고 등 소비자 불만도 속출한다.
또 고추장, 된장, 간장, 순대, 세탁비누, 어묵, 김치, 원두커피 등 일부 제품은 동반성장위원회가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권고한 품목이지만 PB상품은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간다. CJ제일제당 등 식품 대기업들이 신제품 출시를 하지 않고 일부 제품에서는 발을 빼는 동안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유통 대기업들은 중소업체로부터 저가로 제품을 공급받아 매출 신장을 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지만 직접 생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형마트가 PB상품의 이점만 챙길 것이 아니라 책임질 부분을 중소제조업체에게 떠맡기지 말고 상품의 기획,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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