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한국인을 보면 반가울 때가 있죠. 온통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을 찾게 된 것이니까요.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실 시즌 중에 취재를 하다 보면, 친한 외국인 선수들끼리 경기 전에 만나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은 적이지만, 밖에서는 이역만리 타지에서 만난 반가운 '친구'이지요. 같은 고향, 혹은 마이너리그 때 동료 등의 인연이 한국에서도 이어지곤 합니다.
2014년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두 팀에도 그런 '절친'이 있습니다. 바로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나바로와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 소사인데요. 둘은 평소 대구나 목동구장에서 만나면, 오랜 시간 수다를 떠느라 바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이 인연이 된 것도 있지만, 사실 5년 전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라고 하네요.
특히 소사는 이발기를 들고 나바로를 만날 때가 많습니다. 둘은 이럴 때마다 원정팀 덕아웃 근처 복도 혹은 화장실에서 '간이 이발소'를 차리는데요. 손재주가 좋은 소사가 나바로를 앉혀놓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정돈해주곤 합니다. 둘의 고향인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친구가 친구의 머리를 깎아주는 일이 많다고 하네요.
나바로는 소사의 '이발 서비스'에 푸짐한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시즌 중 어머니가 한국에 체류중일 때, 친구를 위해 도미니카산 향신료와 전통음식을 잔뜩 준비했다고 하네요. 우리도 흔히 볼 수 있는 '절친'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 때도 만나 머리카락과 수염을 정돈해줬던 소사는 2차전에서 친구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바로는 1회 첫 타석부터 2루타를 날리더니, 2회엔 투런홈런으로 소사를 넉다운시켰지요. 이발까지 해줬는데 본전도 찾지 못한 상황. 친구에게 당한 기분은 어땠을까요.
사실 소사도 친구 만큼은 꼭 이기고 싶었나 봅니다. 경기 후 넥센 염경엽 감독은 "소사에게 2회 나바로를 어렵게 승부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소사가 강한 승부욕 때문에 무리를 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습니다.
나바로는 현재 삼성 타자들 중에 타격감이 가장 좋은 선수입니다. 넥센 벤치 입장에선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2사 3루 상황이라 무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타격감이 좋은 나바로와 최대한 어렵게 승부를 해 1루를 채우고, 아직 감이 올라오지 않은 박한이와 상대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죠.
1회부터 친구에게 안타를 맞고 선취점을 내줘서 일까요. 소사는 몸쪽으로 직구를 던지며 정면승부를 펼쳤고, 결국 나바로에게 완벽한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3-0, 초반부터 승부의 흐름이 갈린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소사와 나바로는 다시 둘도 없는 '친구'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정도 통하지 않는 냉혹한 그라운드, 과연 둘의 다음 맞대결은 어떨까요. 소사가 등판할 예정인 5차전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대구=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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