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사법정의와 현실, 영화와 드라마에 사적 복수가 등장하고 있다.
영화 '살인의뢰'는 여느 스릴러 영화와는 달리 범죄자가 검거된 이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쇄살인범에게 아내를 잃은 남자가 직접 그를 처단하기 위해 나서고, 그 자신도 여동생을 잃은 범죄 피해자인 경찰은 3년 후 나타나 복수를 감행하는 매제를 막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연쇄살인범은 사형을 선고받지만, 그에게 감옥은 오히려 세상의 증오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도피처다. 이 영화는 유명무실해진 사형 제도에 대해, 그리고 범죄 피해자들을 돌보지 못하는 법과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사적 복수'라는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
MBC 드라마 '앵그리 맘'은 한때 전설의 일진이었던 젊은 엄마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해 직접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발상은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나선다는 설정은 일종의 사적 복수와 다름 없다. 18일 첫 방송에서 그려진 현실은 참담했다. 담임교사는 피해 학생에게 오히려 전학을 권유하고, 교육청과 경찰도 물증이 있어야만 한다면서 도움을 거절했다.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엄마에게 울타리가 돼야 할 학교와 공권력은 무기력했다. 엄마의 선택은 내 손으로 내 딸을 지키고 가해자들을 벌하는 것밖에 없었다.
범죄 피해자의 사적 복수는 내용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막론하고, 스릴러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종 다뤄졌다. 지난해 초 개봉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딸을 성폭행하고 죽게 만든 가해자들을 살해한 아빠의 이야기를 그렸고, 영화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은 납치당한 딸(1편)과 아내(2편)를 구출하기 위해 범죄자들과 맞서 싸운다.
경찰이나 검찰 같은 공권력이 법의 힘으로 가해자들을 처단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이야기는 드물기도 하거니와 좀처럼 인기가 없다. 사적 복수를 다룬 작품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건 법과 권력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법이 가해자는 보호해도 피해자들은 구제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이 영화와 드라마에 투영돼 있다. 실제로 신문 사회면에는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거나 폭행하는 보복 범죄 사건이 종종 오르내리기도 한다.
한 영화 관계자는 "사적 복수가 비현실적이지만 판타지를 부추기는 건 일종의 대리만족을 선사하기 때문"이라며 "법과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리는 작품들이 잇따르는 건 그만큼 현실이 암울하다는 방증이다"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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