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올해 프로야구판에 신선한 활력을 밀어넣고 있는 한화 이글스가 고꾸라질 수도 있던 위기. 그래서 두 번 다시는 나와서는 않아야 할 장면이다. 더불어 '그 장면'을 막기위한 대책 마련이 앞으로 한화 야구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한화 좌완투수 권 혁이 아파서 못 던지거나 갑자기 교체되는 장면. 절대 반복되어선 안된다.
지난 7일,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이날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6회초 2사 1루 때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나온 권 혁이 7회초 2사 2루 때 갑자기 교체된 것. 허리 통증이 생긴 까닭이다. 결국 권 혁은 교체됐고, 부상 의혹을 자아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다음날 병원 검진 결과 '단순 근육통'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근육이 뭉치고 경직되어 생긴 통증이라는 병원의 해석. '단순 근육통'이라는 진단은 현 상태에서느 최선의 결과다. 근육통 증세만 잘 잡으면 곧바로 정상 컨디션과 구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단순히 '다행이다'는 식으로 넘어가선 안된다. 불조심이나 혹은 전염질환 관리체제처럼 '권 혁 부상방지'도 지금 한화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미리 주의를 하는 게 그러지 않는 편보다 100배 이상 낫다. 명확한 이유가 있다.
▶팀 전력 구성이 흔들린다
권 혁이 아파서는 안되는, 그리고 아프게 해서는 안되는 첫 번째 이유. 가장 기본적이자 핵심적인 명제는 바로 권 혁이 현재 한화 전력의 핵심이라서다. 시즌 초반부터 권 혁은 숨가쁜 강행군을 이어왔다. 비상전시체제였기 때문이다. 초반 한화 선발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진했다. 둘 중 하나다. 일단 아프거나 아니면 못하거나.
그럼에도 한화는 늘 천신만고 끝에 5할 승률을 지켜왔다. 그 원동력, 상당부분 권 혁에게서 비롯됐다. 기본적으로 윤규진의 4월초 어깨 부상 이탈 이후 팀의 필승 마무리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마무리만' 한 건 아니었다. 중간계투로도 나왔고, 긴 이닝도 소화했다. 주3회 등판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만큼 잘 던졌다. 말하자면 '제2의 전성기'같은 시간. kt전까지 34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3.33에 4승5패 10세이브 3홀드. 무려 51⅓이닝을 던졌다. 철저한 불펜 운용 계산, 그리고 매번 선수의 컨디션에 대한 점검을 거쳐 기용했다고는 해도 객관적으로 권 혁이 많이 던졌다는 건 사실이다. 이런 권 혁의 역할이 없었다면 한화는 진작에 승률 5할 밑으로 곤두박질 쳤을 것이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권 혁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진다면 당장 엄청난 전력 감소가 예상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한화 마운드에 또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그래서 더 권 혁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그런 면에서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권 혁의 부상'을 더욱 방지해야 하게 됐다. 바로 선발진 일시 개편이 그 변수다. 시즌 초부터 계속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는 선발 송은범을 김 감독이 2군으로 보냈다. 당연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송은범의 부진을 떠안고 가다간 팀이 망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당장 선발의 한 자리에 구멍이 생겨버렸다. 김 감독은 일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현실적은 방안은 불펜 송창식의 일시적인 선발 전환이다. 팀내 불펜 중에서 긴 이닝을 안정적으로 던져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투수이기 때문. 선례도 있다. 불펜에서 출발한 안영명은 현재 팀의 선발 요원으로 뛴다. 만약 권 혁이 부상으로 진짜 빠지게 될 경우 송창식이 나서는 게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벌어지면, 후속 조치들도 뒤따라야 한다. 일단 송창식이 빠져나간 불펜의 한 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급하다고 아무 선수나 쓸 순 없다.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이미 기량이 검증된 기존 선수들의 활용폭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권 혁이 더 자주, 혹은 더 많이 던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 이런 상황은 단순한 상상력의 결과만은 아니다. 현재 팀 사정을 감안하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권 혁은 지금 아프면 안된다. 한화 마운드에 패닉이 올 수 있다.
▶김성근 야구의 상징이다
권 혁이 아프면 안되는, 그래서 한화가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가 '김성근 야구의 아이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4년 만에 프로야구판에 돌아온 김 감독은 단숨에 리그의 지형도를 바꿔놨다. 파격적인 선수 기용과 특유의 '지옥훈련'을 앞세워 한화를 리그 중위권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해까지 최근 수 년간 바닥에서 허덕이던 한화가 유쾌한 '꼴찌들의 반란'을 일으킨 셈. '김성근식 야구'에 한화 팬들은 푹 빠져들었다.
그러나 늘 찬사만 받은 건 아니었다. 분명 팀의 성적은 향상이 되고 있고, 매 경기 흥미로운 명장면이 쏟아지며 시청률과 관중 동원을 주도하지만 김 감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그런 비난의 가장 큰 주요 이슈는 바로 '혹사 논란'이다. 성적을 위해 무리하게 선수를 혹사시킨다는 지적.
김 감독이 아무리 "팀 사정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지금의 한화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말해도 '혹사'에 대한 비난은 계속됐다. 심지어 권 혁이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결국 김 감독과 권 혁은 동시에 입을 닫았다. 불필요한 비난에 일일히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 결과로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게 권 혁은 '김성근식 야구'의 상징이 되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권 혁이 부상을 당하거나 해서 엔트리에 제외된다면 커다란 후폭풍이 나올 수 있다.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김성근의 야구'가 결국 핵심 선수의 부상으로 이어졌다는 비난이 예상된다. 사실 관계의 명확성을 떠나 이런 말이 나오면 것 자체가 한화에는 큰 데미지다. 아직 전력이 완전하지 않은 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권 혁의 허리는 이전에도 종종 아팠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부터 있던 증세다. 삼성에서는 그래서 권 혁을 철저히 관리했다. 허리 통증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재활군으로 보냈고, 재활을 마친 뒤에도 그다지 중용하지 않았다. 권 혁이 삼성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된 계기다.
결과적으로 권 혁의 일시적 허리 통증은 올해의 잦은 등판에 의해 최초발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봐서도 안된다. 단순 근육통이라는 진단이 나왔지만, 이건 몸이 보내는 일종의 사인일 수도 있다. 삼성 시절 권 혁의 발목을 잡았던 허리 부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인이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더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다소간의 성적 하락을 감소하고라도 지금은 일단 권 혁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시기다. 권 혁이 쓰러지면 '김성근 야구'도 휘청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