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습니다."
26일 K리그 23라운드 전남-제주전 승리 직후 기자실로 들어서는 '700경기의 레전드' 김병지의 인사는 그랬다. 간절한 승리였다. "100경기에서만 이기고 200, 300, 400, 500, 600경기에선 연패했는데 이번엔 이겼다"며 활짝 웃었다.
전반 4분 아끼는 후배 이종호의 선제골 직후 후배들이 태워주는 '천하장사 꽃가마'를 탔다. 3대1 승리 직후엔 후배들이 몰려들어 몇번이고 헹가래를 쳤다. 김병지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후배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집중력을 잃을 수 있는 분위기에서 경기력을 보여줬고, 그 결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헹가래도 받았다. 오늘 100경기, 200경기 뛴 선수도 있다. 후배들에게 '매 경기가 소중하다. 다가오는 경기들이 너무 소중하다. 열심히 하자'고 이야기했다"며 웃었다.
후배 이종호의 '꽃가마' 세리머니는 감동이었다. 김병지는 "후배들의 마음이 기특하다"고 했다. "종호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선수다. 그런 좋은 마음을 갖고 있기에 2013년보다 2015년, 나은 선수가 됐고,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봤다. 오늘과 같은 내일이 아닌, 내일은 발전된 모습,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동아시안컵 국가대표에 발탁된 전남의 1명이다. 한국축구를 짊어질 선수다. 마음만큼 실력도 승승장구하길 바란다"고 덕담했다.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을 바꿀 뜻이 있느냐는 농담섞인 질문에 김병지는 단호하게 "전혀 없다"고 답했다. "고객이 오케이할 때까지라는 말처럼, 팬들이 좋아하는 모습은 그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레이드 마크이고, '꽁지머리'라는 닉네임을 팬들이 주신 것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700경기 고지에 오른 김병지는 777경기를 다음 목표 삼았다. "정말 쉽지 않다. 25세때 1, 2년은 물만 먹고도 버틴다. 24년 축구인생보다 남은 77경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힘든 여정이 될 것이고, 지금껏 최선 다해온 것처럼 명분 있는 모습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1초의 망설임 없이 "자신있다"고 답했다. "지금 컨디션이라면 1년 이상 더할 수 있다"고 했다.
언남고 축구선수인 장남 태백군과 프로 그라운드에 함께 서는 꿈이 여전히 유효하냐고 묻자 김병지는 미소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태백이에게 이야기했다. 아빠가 너 대학졸업할 때까지는 못기다릴 것같다. 고등학교 1~2년 열심히 해서 프로에 도전해라. 체력을 키우고 최선을 다해라. 아빠가 많이 못기다린다. 네가 쫓아가야 한다고 말해줬다." 아들의 대답을 물었다. "알았다고 하더라." K리그 700경기, 패밀리맨 김병지가 활짝 웃었다. 광양=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