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3개월18일'의 나이, K리그 통산 700번째 경기에 빛나는 '현역 레전드' 김병지(전남), 체력, 실력, 자기관리 등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가 세월을 거슬러 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소통의 능력'이다.
스무살 어린 후배선수, 1992년부터 2015년을 관통하는 다양한 세대, 다양한 계층의 팬들과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소통할 줄 안다. 그를 전남으로 이끈 '절친 선배' 하석주 아주대 감독이 '700경기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김병지는 좋은 선수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26일 제주전에서 짜릿한 3대1 승리로, 통산 700경기를 아름답게 장식한 김병지가 기자회견에서 유쾌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하더니 전날 밤부터 이날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뜨거운 화제가 됐던 이야기를 꺼냈다.
유명 온라인 축구게임을 생중계하는 'VJ감**'가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됐다. 동영상 속 감스트가 '2002 전설 선수팩'에서 김병지 카드 4장을 잇달아 뽑은 후, 2회 연속 '강화'에 실패하자, 좌절한 나머지 김병지를 향해 걸쭉한 욕을 내뱉으며 나뒹구는 장면이다. 축구 및 게임, 유머 사이트에서 화제가 된 이 동영상을 직접 접한 김병지는 자신의 SNS에 해당 영상을 올렸다. '감** 네 이놈, 남들도 웃기고, 보는 나도 웃겼지만 게임 좋아하는 우리 아들들은 우짤겨.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 속설이 있던데 그래서 이렇게 오래 하는 건 아닐런지. 그래도 그렇지. 용서받을 방법은 딱 하나, 현실에선 김병지 지지자가 되는겨, 우짤껴. 선택해서 알려줘.'
게임 속 자신을 향해 재미삼아 욕설을 내뱉은 VJ에게 통큰 유머로 화답했다.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김병지 이름 옆에 해당 VJ의 이름이 연관 검색어로 떴다. 하룻만에 6000여 개의 '좋아요'가 찍혔다. 깜짝 놀란 '감***'는 SNS를 통해 즉각 사과문을 올렸다. '설마 김병지 형님께서 보실 줄 몰랐는데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실제로는 형님 팬입니다'라고 썼다. '항상 화이팅하시고 우리나라 NO.1 키퍼로 남아주십시오, 저 본계정 스쿼드에 형님 금카를 꼭 쓰도록 하겠습니다. 김병지 형님 화이팅!' '대인배' 김병지의 제안대로, 현실 세계에서 팬의 길을 선택했다.
김병지는 취재진에게 이 해프닝을 이야기했다. "그냥 지나쳤으면 그저 웃긴 장면으로 끝날 텐데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욕까지 수용하는 모습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줬고 박수를 쳐주셨다"며 웃었다. 김병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통의 힘'이었다. " K리그가 마음을 열고 무언가를 찾아내고 스토리를 만들 때 뜨거운 반응이 따라온다"고 했다. "처음으로 '좋아요' 6000개를 넘겼다. 깜짝 놀랐다. 팬들을 위한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소통이 필요하다. 팬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노력이 필요하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축구 관계자들이 가져야할 자세"라고 했다. 45세의 골키퍼가 10대, 20대, 아들 조카뻘 네티즌들과 게임과 게임속 해프닝을 통해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본인에 대한 욕설이 난무하는 동영상을 보고 솔직히 화가 나진 않았을까. 김병지가 말했다. "솔직히 처음엔 욱했다. 그런데 우리 아들들도 그 게임을 한다. 내 카드가 나왔는데 '강화가 제로'면 '아빠 뭐하느냐' 할 거라고 이해했다. 즐겁게 표현하고 소통한 덕분에 평생 지지자를 하나 얻었다. 아주 유쾌했다"며 웃었다.
24년의 세월, 90분 내내 변화무쌍한 그라운드에서의 경험은 45세의 골키퍼에게 폭넓은 스펙트럼과 사람사는 세상의 지혜를 선물했다. "열받고 화낼 일도 마음으로 이해하고 지혜를 발휘한다면 편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축구선수로서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포터스가 설령 욕을 한다 해도, 선수가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팬들도 공감하는 모습들을 봤다. 24년간 프로로 뛰면서 나는 지혜를 배웠다. 이해하고 포용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광양=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