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 맨유는 경험이 부족한 것 같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 4일(이하 한국시각) 스페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맨유와 '경험 부족'은 선뜻 연결되지 않는 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 여름이적시장 마감일 맨유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다비드 데헤아 사건부터 살펴보자. 알려진대로 레알 마드리드의 올 여름 최우선 타깃은 데헤아였다. 이케르 카시야스를 포르투로 보낸 레알 마드리드는 데헤아 영입을 노렸다. 맨유는 데헤아 이적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데헤아는 레알 마드리드행을 원했다. 이 과정에서 데헤아는 루이스 판 할 맨유 감독과 갈등을 빚었다. 맨유는 판 할 감독과 알크마르 시절 함께 했던 세르히오 로메로를 영입하며 데헤아 이적에 대비했다. 그리고 이적시장이 마감되는 1일,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는 극적으로 데헤아 이적에 대해 합의를 마쳤다. 레알 마드리드는 3000만유로(약 400억원)를 지불하고, 맨유는 1500만유로(약 200억원)에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를 데려오기로 했다. 하지만 협상은 엉뚱한 이유로 좌절됐다.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가 최종 합의에 도달한 것은 현지시각으로 8월31일 밤 11시 30분이었다. 스페인 여름 이적 선수 등록은 8월 31일 11시 59분 59초까지 가능하다. 스페인은 이 시간을 넘긴 이후 선수 등록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맨유 측이 스페인프로축구연맹에 보낸 서류는 28분이 늦은 밤 12시28분에 도착했다. 양 팀은 진실공방을 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어느 팀도 웃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골키퍼 포지션 보강에 실패했고, 맨유는 골칫덩이로 전락한 데헤아를 안고 가야한다.
페레스 회장은 "(데헤아 영입 실패는)치욕적인 일이다. 나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왜 늦게 서류가 들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협상 완료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생각에 맨유는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고 맨유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스페인과 영국 언론 역시 맨유 측이 의도적으로 이번 협상을 파기시킨 것이 아니냐는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맨유는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의 서류가 제 시간에 도착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서투름을 지우기 위해 초점을 흐리고 있다. 우리 모두 남을 비난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레알 마드리드에 있다"고 반박했다.
데헤아로 체면을 구기고 있는 사이, 맨유는 깜짝 영입에 성공했다. 그토록 원했던 최전방 공격수다. 놀랍게도 맨유의 선택은 AS모나코의 10대 공격수 앤서니 마샬이었다. 맨유는 지난 시즌 최전방을 책임졌던 라다멜 팔카오와 로빈 판 페르시를 각각 첼시와 페네르바체로 보냈다. 남은 원톱자원은 웨인 루니 뿐이다. 맨유는 미드필드진 업그레이드에 집중하는 사이, 원톱 자원 보강 작업을 소홀히 했다. 물망에 오른 곤살로 이과인(나폴리), 에딘손 카바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이상 파리생제르맹),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 네이마르(바르셀로나) 등 맨유가 잡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 시즌은 개막됐고, 루니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다급해진 맨유는 이적시장 마감일 최종 선택을 해야했고, 맨유의 낙점을 받은 주인공이 마샬이었다.
깜짝 영입을 넘어 충격에 가까운 선택이다. 지난 시즌 혜성같이 등장하며 '제2의 앙리'로 불린 마샬이지만, 지금 맨유에 필요한 것은 잠재력이 있는 선수가 아니라 검증된 골잡이였다. 루니는 마샬 영입 소식을 듣고 "마샬이라는 선수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을 정도다. 더 놀라운 것은 마샬의 몸값이다. 맨유는 마샬 영입에 무려 3600만파운드(약 650억원)를 투자했다. 옵션이 모두 발효될 경우 이적료는 5800만파운드까지 늘어난다. 바딤 바실리예프 AS모나코 부회장 역시 맨유의 엄청난 제안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바실리예프 부회장은 "마샬의 몸값이 5800만파운드(약 1050억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우리가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이 금액은 세계 최고인 선수인 수아레스나 네이마르의 몸값"이라고 털어놨다.
'왕년의 스타' 로비 세비지는 "맨유가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며 "현재 맨유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근심을 표했다. 맨유 수석코치를 지낸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맨유는 패닉 바이를 하고 있다. 이적시장에서 잘못된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 나간 결정을 해서 선수를 영입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은퇴 이후 맨유에 찾아온 위기는 성적 하락이 아니라 이 같은 상황 대처 능력의 부재가 아닐까.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