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이다. 다음 경기를 볼 수 있는 여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포스트 시즌 무대는 그렇다.
야구는 변수가 많다. 겉으로 보기엔 자그마한 나이스 플레이와 미스 플레이가 승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준비한 스포츠조선의 야심찬 포스트 시즌 기획. [PS포인트]다.
타격(B) 수비(F) 주루(R) 피칭(P)으로 세분화, 요점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번트는 타자의 아웃카운트를 하나 희생해서 주자를 진루시켜 득점 확률을 높이는 작전이다. 세이버 매트리션들은 번트가 오히려 득점 기대치를 낮추는 소극적 공격이라고 비판하지만, 한국 야구에서는 여전히 높은 비중으로 사용된다. 실제로 정교하게 댄 번트는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두산 베어스 민병헌과 김재호가 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번트의 미학을 보여줬다. 민병헌은 삼성 '100프로 수비 시프트'의 바늘같은 틈새를 파고드는 기술적인 드래그 번트, 김재호는 삼성 내야진의 방심을 꿰뚫는 기습번트를 각각 성공했다.
2-1로 간발의 리드를 잡은 두산의 5회말 공격. 무사 1, 2루 추가점 기회가 생겼다. 3번타자 민병헌 차례. 민병헌은 이날 타격감이 좋지 않았다. 1회 병살타를 쳤고 3회에는 좌익수 뜬공에 그쳤다. 때문에 두산 김태형 감독은 번트를 지시했다.
그러자 정교한 내야 수비 시프트를 갖고 있는 삼성은 선행 주자, 특히 2루 주자의 3루 진루를 막기 위해 '100프로 수비 시프트'를 가동했다. 삼성 내야의 주특기. 안일하게 번트를 댔다간 선행주자 뿐만 아니라 타자 주자까지 동시에 아웃될 수 있다. 이걸 깨려면 수비가 쉽게 잡지 못하도록 타구의 방향과 스피드를 정교하게 조정해야 한다. 아니면 아예 페이크번트 슬래시로 타구를 날려버리는 방법도 있다.
민병헌의 번트 기술은 대단히 정교했다. 클로이드의 4구째를 기술적으로 포수와 3루수 사이 공간에 떨어트렸다. 공을 맞히는 순간 민첩하게 몸을 뒤로 빼며 스피드도 이상적으로 감소시키며 주자가 진루할 타이밍을 충분히 벌어줬다. 결국 민병헌의 기술적인 번트는 양의지의 희생플라이에 의해 득점까지 연결됐다. 두산의 귀중한 추가점이었다.
김재호의 번트도 뛰어났다. 3-1로 앞선 6회말 1사 1루. 희생번트가 나올 상황은 아니다. 삼성 내야진도 그래서 정상 수비를 했다. 김재호의 번트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재호는 그 방심의 틈을 노렸다. 타석에 나오자마자 심창민의 초구에 기습번트를 대고 1루로 뛰었다.
삼성 3루수 박석민이 달려왔지만 거리가 멀었다. 송구해봐야 세이프다. 박석민은 결국 타구가 3루 파울 라인 밖으로 나가기만 기대하고 그냥 서서봤다. 여기에 행운도 따랐다. 파울 선상으로 구르던 타구가 3루 베이스에 맞아 인플레이가 됐다. 이 기습번트 안타는 삼성 심창민과 내야수들의 심리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심창민은 볼넷을 허용했고, 2루수 나바로는 2실점을 만든 실책을 저질렀다. 번트는 결코 소극적인 공격 방법이 아니었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