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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김정환의 값진 동메달, 11년 국대 생활의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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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을 확정지은 후 김정환(33·국민체육진흥공단)은 포효했다.

그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11년간의 힘들었던 국가대표 생활 끝에 얻은 값진 수확, 이번 동메달이었다. 김정환은 11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의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모즈타바 아베디니(이란)와의 2016년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3~4위전에서 15대8로 승리했다. 동메달을 목에 건 김정환은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개인전 첫 번째 메달을 획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정환은 한국 사브르를 이끈 버팀목이었다.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그가 11년 동안 대표팀에 머무는 동안 그와 함께 했던 또래 선수들은 전부 은퇴를 선언했다. 훈련장에서 늘 만나야 했던 사람은 띠동갑 이상 차이나는 까마득한 후배들이었다. 힘든 훈련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펜싱에 미친 삶을 보내다보니 잃은 것도 많았다. 친구들이 놀때 운동만 했다. 남들 다하는 연애도 못하고, 가족과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다. 그를 버티게 한 원동력은 단 하나, '한국 남자 사브르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란 타이틀이었다.

마침내 밝은 리우의 아침, 대진표를 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이날을 위해 세계랭킹을 2위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손에 쥐어진 대진표는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부정적 생각을 긍정 마인드가 밀어냈다. '그래, 어차피 메달을 위해서는 넘어야 하는 상대들, 오히려 어려운 대진이 더 좋다.' 피스트에 올라보니 예상대로 였다. 더 힘든 것은 심판의 애매한 판정이었다. 동시 공격이 인정되지 않는 사브르에서는 심판의 역할이 크다. 수차례의 애매한 판정이 이어졌다. 하필 가장 힘든 상대였던 산드로 바자드제(조지아)와의 16강전에서 억울한 판정이 집중됐다. 다행히 브라질 팬들의 야유와 김정환의 투혼이 이어지며 승리할 수 있었다.

마침내 준결승, 이 고비만 넘으면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었다. 상대는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애런 칠라기(헝가리). 욕심이 앞섰다. 이전까지의 경쾌했던 움직임이 무뎌졌다. 상대가 먼저 들어온 뒤에 공격을 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과는 패배였다. 운명의 3~4위전만 남았다. 패하면 메달 꿈도 물거품이 된다. 혼란스러웠다. 준결승전 패배로 산란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11년간의 생활을 돌이켜봤다. 그가 느낀 교훈이 생각났다. '이기고 싶은만큼 마음을 비워야 이길 수 있다.'



3~4위전에서 만난 아베다니는 이미 한번 상대해 본적이 있는 상대였다. 그때도 욕심이 앞서서 패했다. '연습처럼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남아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편하게 하기로 했다. 거짓말처럼 경기가 풀렸다. 일방적으로 아베다니를 밀어붙인 김정환은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그 순간 2009년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2008년 베이징 대회 출전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진 김정환에게 "런던올림픽이 있잖아"하고 힘을 불어넣어 주셨던 그 분.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습을 꼭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켜보실 아버지 생각에 올려다 본 하늘, 그 덕에 고인 눈물을 떨구지 않을 수 있었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김정환의 펜싱인생은 계속된다.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사브르 룰이 바뀐다. 지금보다 더 심판의 영향이 커진다. 아시아 선수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은퇴도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올림픽에 나서고 싶은 생각도 있다.

4년 전 동료들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김정환은 이제 혼자 힘으로 메달을 거머쥐었다. 금 만큼이나 값진 동메달이었다. 김정환에게 물었다. 이번 동메달이란? "음,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힘들었던 기억을 씻어준 시원한 동메달이었다.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