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고개가 지나갔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결정되는 2017년의 첫 걸음을 옮긴 슈틸리케호, 실망을 넘어 절망의 한숨이 그라운드를 가득 메웠다. 중국 원정에서 0대1로 패하며 '공한증'은 사라졌고, 낙승이 예상되던 시리아와의 홈경기에서도 답은 없었다.
1대0 승리, 그러나 승점 3점이 창피할 정도였다. '온돌 축구'. 'MVP는 크로스바', '흰색 시리아는 레알 마드리드'…, 게시판을 가득 메운 조롱만이 눈가를 어지럽히고 있다.
운명의 종착역까지는 이제 단 3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A조 1위 이란은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러시아행을 향한 7부 능선을 넘었다. 5승2무, 승점 17점이다. 2위 싸움의 주인공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이다. 한국이 4승1무2패로 승점 13점, 우즈벡은 4승3패로 승점 12점. 승점 차는 불과 1점이다.
2, 3위는 천양지차다. 2위는 1위와 함께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지만 3위는 플레이오프(PO)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험난한 길이다. 10월 B조 3위와 PO를 치른 뒤 11월 북중미 4위와 대륙간 PO를 또 한번 치러야 한다. PO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다. 결코 '꽃길'을 장담할 수 없다.
냉정하게 분석할 때 현재의 슈틸리케호로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은 어렵다. '요행'이 계속돼 월드컵 본선에 가더라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부에서 곪은 상처는 그라운드에 오를 때마다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감독과 선수, 총체적인 부실이다. "축구는 때로는 운으로 승리할 수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인식은 여전히 깜깜이다. '분위기 파악' 자체를 못하고 있다. "지금 같이 경기하면 감독이 누가와도 문제는 많이 생긴다." 고독한 캡틴 기성용(스완지시티)의 말에선 서글픔이 밀려온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될까, 그러나 슈틸리케호는 방향타를 완전히 상실했다. 어디에서부터 일그러졌는지 내부 진단조차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뾰족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칼을 잡을 '명의'도 없다. 이대로라면 세월이 흘러가는대로 그저 바라만 볼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한계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조차 필요 없다. 입이 아플 지경이다. 선수들도 못지 않다. 다들 자기 잘 낫 맛에 산다. 태극마크에 대한 엄중한 두려움, 책임감은 찾을 수 없다. '겉멋'만 잔뜩 부릴 뿐 정작 그라운드에선 실속이 없다. '돈의 논리' 앞에서만 자신을 과대포장할 뿐, 끊임없이 나아져야 할 기량은 제자리걸음이다. 결국 '하향평준화'의 부메랑이 대표팀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 한 번 떨어져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독한 말도 들린다.
그러나 월드컵은 늘 그랬듯 한국 축구의 시대적 과제였다. '축구人'이라면 월드컵, 그 공든탑을 간과해선 안된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역사에는 100년이 훌쩍 넘은 한국 축구의 혼이 모두 담겨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곧 '몰락'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여잡을 희망이 남아 있는 현재가 중요하다. 한가롭게 지켜볼 여유가 없다.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현 상황을 그냥 지나쳐선 안된다.
대한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렵다", "대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지 말고 답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한다. 다행히 시간도 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은 6월에 다시 열린다. 그 때까지 남은 약 3개월의 시간은 하늘이 허락해 준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전술도, 동기부여도, 용병술도 없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한국 축구의 운명을 맡기기에는 그동안 태극전사들이 차곡히 쌓아온 위대한 발걸음이 엄중하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바일 팀장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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