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태극전사들이 국내에서 열리고 있는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기니(3대0)와 아르헨티나(2대1)를 연파, 16강 진출을 조기 확정했다.
아직 신태용호가 만족할 단계는 아니다. 그들은 최소 8강 이상을 목표로 잡고 있다. 가야할 길이 멀다는 얘기다.
태극전사들은 두 경기를 통해 한국 축구가 향후 '탈 아시아'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아프리카의 복병 기니와 남미 최강 아르헨티나를 제압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신태용호의 경기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A대표팀의 부진에 비난을 쏟아냈던 축구팬들에게 '동생'들의 색깔 다른 플레이와 투혼은 신선한 청량감을 안겼다. 기대감도 최고조다. 이대로라면 83년 멕시코 청소년대회 4강 신화와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뛰어넘는 게 아니냐는 이른 전망도 나온다. 대체 동생 태극전사들은 왜 이렇게 축구를 잘할까. 이들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U-20 대표팀에는 분명 과거 태극전사와는 다른 축구를 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바르셀로나 듀오', 이승우(19)와 백승호(20)다. 둘은 한국에서 태어나 공을 차기 시작한 후 스페인 유학을 통해 FC바르셀로나 스타일의 축구를 익혔다. 바르셀로나는 전 세계에서 가능성이 있는 우수한 자원을 한데 모아 '라 마시아'라는 기숙사에서 축구와 공부를 가르친다. 승우-승호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의 살벌한 경쟁을 뚫고 생존했다. 승우는 후베닐A(유소년), 승호는 바르셀로나B(2군)까지 올라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세밀한 패싱게임으로 세계 최상권을 자랑하는 클럽이다. 승우-승호에게는 그런 바르셀로나의 DNA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둘의 스타일은 닮은듯 다르다. 승우는 순간적인 폭발력과 번뜩이는 재치로 중무장했다. 승호는 듬직하고 꾸준하며 침착한 스타일이다. 승우는 기니전 결승골과 아르헨티나전 선제골에서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환상적인 몸놀림을 펼쳤다. 아르헨티나전에선 하프라인부터 40m를 드리블 돌파한 후 감각적인 찍어차기로 골망을 흔들었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와 바르셀로나 선배 스타 메시 정도가 할 수 있는 골 장면을 이승우가 펼쳐보였다. 그것도 세계적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원더보이' 이승우가 원맨쇼를 펼쳤다. 에이전트에 따르면 해외 축구 관계자들조차 "한국에도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있었느냐"며 감탄했다고 한다. 승우-승호는 우리 축구 상황에선 나오기 힘든 '축구 신인류'라고 볼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가슴 속으로 이번 대회를 간절히 기다려왔다. 세계 축구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하는 큰 대회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번 대회는 이들에게 즐거운 축제같은 무대다. 천재가 노력하고, 즐기니 당할 자가 없다.
대회 초반 긴장감은 금방 사라졌다. 뛰어놀기 시작했다. 당참을 넘어 당돌하다. 승우는 골을 넣고 팬들에게 달려간 후 도도한 몸짓을 펼쳐보였고 또 신나게 춤을 추기도 했다. 기니전 쐐기골과 아르헨티나전 PK골을 터트린 승호도 카메라를 향해 '티켓' 세리머니를 펼쳤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어메이징 팀의 완성, 그 뒤에는 아주 특별한 리더가 있다. '난 놈' 신태용 감독이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듀오를 토종 태극전사들과 잘 섞어 '작품'을 완성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둘의 장점은 극대화시켰고, 강약조절을 통해 '원(one)팀' 분위기를 조성했다.
신 감독은 성남 일화 사령탑 시절 아시아챔피언스리그(2010년) 정상에 오른 바 있다. 그는 팀을 만들 줄 아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선수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밀당(밀고 당기고)'도 잘 한다. 아들뻘 선수들의 장난을 다 받아주면서도 운동에 있어선 분명한 선을 지킨다. 거침없이 소통하면서 선수들과 하나가 됐다. 그는 선수들이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대외적으로 지적하는 대신 선수 편에서 감싸 안는다.
지금 신태용호는 닻을 올린 후 멋진 출발을 했다. 그 끝을 지금 속단하기는 이르다. 신 감독의 목표대로 최소 8강까지 갈 수도 있고, 이승우의 욕심대로 우승까지 노려볼 수도 있다. 그 끝이 어디까지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진정 의미있는 것은 한국 축구도 드디어 세계를 호령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는 점이다. 신태용호에는 역대 대표팀을 훌쩍 뛰어 넘는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