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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은 리버풀 선수들과 팬들의 마음가짐을 한 층 더 단단하게 했다. 경기 직전 양 팀 선수들이 도열했다. 리버풀 레전드의 사망을 추모했다. 토미 로렌스. 1957년부터 1971년까지 리버풀에서 뛴 전설적 골키퍼다. 1부리그 우승 두번, FA컵 우승 1번을 기록했다. 몇 해 전 BBC의 한 기자가 리버풀 시내에서 머지사이드 더비와 관련해 리버풀 시민들과 했던 인터뷰가 있었다. 이 영상에서 BBC 기자는 한 노인과 인터뷰를 했다. 1967년 FA컵 5라운드 머지사이드 더비를 기억하냐는 질문을 했다. 그는 "당연히 기억한다. 당시 나는 뛰었다. 리버풀의 골키퍼였다"고 했다. 로렌스는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이런 그가 10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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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은 올 시즌 여름 이적 시장 막판에 아스널을 떠났다. 아스널은 그에게 18만파운드의 주급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반면 리버풀이 제안한 주급은 12만파운드였다. 그럼에도 체임벌린은 리버풀을 택했다. 이유는 하나. 포지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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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체임벌린은 달랐다. 예전의 체임벌린이 아니었다. 경기 전 체임벌린은 "압박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인터뷰했다. 그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에서 압박의 시발점이 됐다.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리버풀이 맨시티를 압도하는데 큰 힘이 됐다. 전반 9분 압박을 통해 볼소유권을 가졌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중거리슈팅으로 선제골까지 뽑았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리버풀 팬들은 스털링이 볼만 잡으면 야유를 쏟아냈다. 스털링의 움직임은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자신감있는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다. 전술상으로 악영향을 끼쳤다. 맨시티는 좌우로 많이 벌려서 경기를 펼치곤 한다. 이날 원톱인 아게로가 많이 움직였다. 그 공간에 스털링을 비롯해 사네와 데 브라위너, 귄도안 등이 침투해야 했다. 그러나 스털링의 침투가 매끄럽지 않았다. 결국 맨시티는 리버풀에게 주도권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리버풀 팬들은 집요했다. 후반 26분 스털링이 교체아웃될때까지 야유를 멈추지 않았다.
쿠티뉴
이 경기 전 리버풀은 에이스를 잃었다. 필리페 쿠티뉴가 바르셀로나도 떠났다. 이날 경기는 쿠티뉴 이적 후 첫 리그 경기였다.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쿠티뉴에 앞서 루이스 수아레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등이 리버풀을 떠나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바 있었다. 또 쿠티뉴는 이미 지난 여름 이적 시장에서 바르셀로나행이 유력했었다. 리버풀 팬들 가운데서도 쿠티뉴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경기력적인 측면에서도 쿠티뉴의 부재는 크기 않아 보였다. 리버풀은 4골이나 뽑아냈다.
맨시티는 금방 무너질 것 같았다. 후반 초반 3골을 내리 내줬다. 올 시즌 맨시티가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센터백들은 약했고 미드필더들은 볼을 쉽게 내줬다. 골키퍼도 실수를 범했다. 만약 1대4로 졌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후 팀의 리듬이 교묘하게 망가질 수도 있었다. 연패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 경기에서는 지더라도 뭔가 반전이 필요했다.
맨시티는 올 시즌 선두 독주팀다웠다. 후반 35분 이후 집중력을 보였다. 39분 베르나르도 실바, 46분 일카이 귄도안이 연속골을 넣었다. 3대4까지 따라붙었다. 그 10여분 동안 맨시티는 다시 자신들의 경기력을 회복했다. 한 경기에서 삐끗했을 뿐이다. 그 후유증은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