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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국 연수 김주성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값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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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 남자 농구의 레전드 김주성. 이제 그가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은 더 볼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김주성은 지도자 연수를 위해 4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출국 전 김주성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앞으로 다가올 제2의 농구 인생, 그리고 한국 농구 발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비시즌 휴식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금도 다음주에 복귀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계속 쉬니 좋다. 쉬니까 살이 빠진다. 나는 운동을 안하면 근육이 빨리 빠지는 스타일이다. 연수 준비를 하고 바빴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았다. 그동안 아빠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했으니, 그걸 채워주려고 열심히 지냈다. 재미있었다.

-4일 연수를 위해 출국하는데 어디로 떠나나.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으로 간다. 특별히 연수를 받을 팀을 정해 코치 연수를 받는 건 아니다. 대학교팀, NBA D리그 팀 등 다양한 팀 훈련 과정을 지켜볼 계획이다. 시간이 될 때마다 NBA 경기장도 찾을 계획이다. 농구 선진국에서 다양한 팀들의 시합 전 준비 과정 등을 공부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유럽도 가보고 싶었는데, NBA팀의 훈련과 경기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장점에 미국을 선택했다. 일단 1년 정도 머물 계획이다. 시간이 된다면 유럽쪽도 돌아보고 싶다.

-연수 기간 특별히 배우고 싶은 게 있는지.

▶한국 농구와는 차이가 클 것이다. 워낙 개인 능력들이 좋지 않나. 개인 훈련은 어떻게 하는지, 몸관리나 기술 트레이능 등은 어떻게 해야하는 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학팀들의 기초 훈련 방법을 보고 싶다. 나는 비시즌 때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17년 동안 프로팀-대표팀만 왔다갔다 했다. 1달 이상을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농구를 떠나서도 이번 1년 경험이 정말 값진 경험이 될 것 같다.

-선수 생활 동안 어떤 지도자가 가장 기억에 남나.

▶운 좋게 훌륭한 감독님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중앙대 시절 정봉섭 감독님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당시 정석과는 다른, 이해하기 힘든 스텝이나 더블클러치 슛 같은 기술을 시키셨다. 속공을 나갈 때도 달려나가는 선수 머리 위로 공을 던지게 했다. 미식축구가 아닌데 말이다. 몸을 풀 때도 다른 팀들과 달리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했다. 신체 밸런스를 위해서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부터 한 발 앞서나가셨던 것 같다. 최근엔 키 큰 선수를 피하기 위해 플로터슛을 던지지 않나. 정석이 아니어도, 기술을 익혀놓으면 승부처 중요한 순간 그 기술이 발휘될 걸로 생각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보며 본인은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나.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나는 자율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코칭스태프가 시합에서 싸울 전략을 짜면, 선수는 스스로 비시즌 몸을 만들어야 한다. 스킬 트레이닝을 하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든 그 준비는 개인이 하는 것이다. 팀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만들어주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농구 선진국에서 그런 모습을 계속 보고싶은 마음이 크다. 이게 맞는 방법이라는 내 자신의 확신이 서야, 향후 지도자가 됐을 때 그 확신으로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수 생활 마지막 리더로서의 경험도 중요했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던 팀의 원칙이 있다. 선-후배 상관 없이 서로 얘기하고 귀를 열어주는 팀이다. 실제로 그런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지난 시즌 도중에도 후배들한테 시합 도중에 욕 많이 먹었다. '자세가 왜이렇게 높나', '왜 이 때 이쪽으로 안움직이느냐'라고 잔소리 한다. 칭찬 들을 때도 있었다. 거짓말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서민수, 김현호 등이 나에게 스스럼 없이 얘기했다. 순간적으로 욱할 때도 있었지만 다 맞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선수단끼리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그런 팀의 경기력은 개개인 실력을 떠나 무시 못한다. 선수 생활을 돌이켜보면, 서로 대화가 되는 팀 분위기가 생겼을 때 성적이 좋았다. DB는 가족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제 선수로는 진짜 끝이다. 이룰 건 다 이룬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웠던 게 있다면.

▶아쉬운 순간은 없었다. 마지막 시즌 식스맨상까지 탔으니 할 건 다했다. 나는 냉정히 농구를 잘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팀과 감독님을 잘만나 혜택을 많이 받은 선수다. 은퇴도 조용히 할 뻔 했는데, 디온테 버튼이라는 외국인 선수와 이상범 감독님을 만나 과분한 은퇴 투어까지 했다. 운도 실력이라고 하면, 나는 운 좋은 실력자인 것 같다.(웃음) 이상범 감독님이 '마무리 센터'라는 새로운 역할을 주셨던 것에 정말 감사하다.

-늘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의 정성이 있었다. 은퇴에 아쉬워하시진 않았나.

▶당연히 아쉬워하신다. 어머니께서는 1년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말씀도 하셨다. 아버지는 농구장 나들이를 못가시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신다. 유일한 나들이가 아들 경기 구경가는 거였다. 지극히 내 생각만 하자면 1년 더 했을 것 같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내가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그 모습을 좋아하셨다. 그래도 후배들을 위해 은퇴하는 게 맞았다. DB라는 팀은 내가 사라져야 또 도약을 할 수 있는 팀이다. 그걸 내가 알았다. 나도 사람이다. 아쉽지 않았겠나. 하지만 기쁘고, 또 편하게 은퇴했다.

-농구 인기는 떨어지는데, 선수들 몸값은 높아져만 간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농구만 잘해서는 안된다. 팬서비스나 사회 공헌 등에도 조금 더 신경써야 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부분을 잘 못했다. 그래도 은퇴 전 마지막에는 원주팬들과 살갑게 지내려 열심히 했다. 또, 대표팀에 사명가믈 갖고 임했으면 한다.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 인기도 올라간다. 돈보다 값진 게 태극마크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이던 1998년부터 2014년까지 계속 대표팀에서 뛰었다. 농구 인생 2/3를 대표팀에서 보냈다. 그래서 애착이 정말 크다. 대표팀은 늘 나의 팀이라고 생각했다. 후배들도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연수를 떠나기 전 한국 농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농구 인기 추락,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KBL에 새 총재님이 오셔서 새로운 포부를 말씀해주셨는데, 기대가 크다. 나도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어떻게 한국 농구가 더 발전할 수 있을 지 생각해보겠다. 연맹, 선수, 언론, 팬 모두 조금씩 더 노력을 해야한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