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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의 관광포커스=지역축제,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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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의 관광포커스=지역축제,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

추분(23일)이 코앞이다. 절기 도둑은 못한다더니 대지엔 벌써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본격 가을이 무르익는 시절, 때를 맞춰 전국 각지에서는 다양한 가을축제가 한창이다.

지평선축제, 송이축제, 유등축제, 탈춤페스티벌… 등. 올가을 펼쳐질 이름 있는 가을 축제만도 대략 70~80가지에, 그 테마와 내용도 계절만큼이나 풍성하다.

문화 관광 콘텐츠, 그 중에서도 우리 삶에 기반을 둔 지역축제는 지역민과 내방객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생의 콘텐츠이다. 게다가 확장성까지 뛰어난 장르이다 보니 관광산업측면에서 보자면 이만한 효자가 또없다. 축제가 내방객 확대를 통한 지역관광 활성화, 이에 따른 내수경기 진작이라는 경기부양의 효과적 지렛대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축제 콘텐츠의 매력성 여부는 근사한 지역관광 인프라와도 직결된다.

하지만 우리 축제 소비자들은 일련의 지역축제들을 '재미없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재미없음'이라는 말 속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식상하다' '내방객의 니즈를 모른다' '그래서 찾고 싶지 않다'….

결국 여기에는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하는 축제소비자들의 엄중한 항의가 내포 되어 있는 셈이다.

왜, 공들여 만든 지역축제가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공급자 중심의 '관급축제'를 그 이유로 꼽을 법하다.

국내 지역축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양적, 질적으로 큰 성장을 거듭해왔다. 특히 전국적으로 연간 1500여 개의 크고 작은 축제가 펼쳐질 만큼 양적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에 발맞춰 축제의 콘텐츠 또한 일정 수준 이상 도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축제가 소비자의 니즈와는 동떨어진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지역축제는 1995년 시작된 지자체제도와 그 성장의 궤를 함께 해왔다. 이후 지자체제도의 안착과 더불어 지역축제 또한 우후죽순처럼 크게 늘었다. 이는 지역의 관광산업 발전에도 기인하지만 지자체장 선거와도 무관치가 않다. 지난세월 상당수의 지자체장들이 지역 축제를 일종의 표밭 관리용 선심성 축제로도 활용해 온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함량미달의 축제조차도 '연륜'을 자랑하며 버젓이 존속하고 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라는 효율과는 거리가 먼 혈세낭비의 전형이다.

물론 관주도 축제가 전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우수한 축제도 있다. 특히 축제의 초기 정착기 지자체의 예산과 인력 지원은 활착에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축제가 어느 정도 성숙기에 이르러서는 관주도의 포맷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그래야 매력과 자생력을 갖춘 지역민들의 축제로 거듭날 수가 있다.

부실한 관주도 축제는 흔히 '킬러콘텐츠' 부재로도 이어진다. 한마디로 달달한 팥소가 빠진 찐빵, 매력 없는 축제에 다름없다. 이는 적지 않은 우리 지역축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표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름값조차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는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재도 문제 삼을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인력부족인 경우가 더 많다. 제법 규모가 큰 지역축제 조차도 담당자가 한두 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축제담당 공무원들은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거기에 1~2년차 순환보직에 전문성마저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라면 담당자로써 성공축제에 대한 압박감은 더 크게 다가올 터다. 지난 해 한 지역축제 담당공무원이 불현듯 내뱉은 넋두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축제 개막일은 다가오는데, 어디로 도망치고 싶습니다. 정말 죽도록 싫습니다!"

지자체 문화관광담당 공무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순간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큰일이다 싶었다. 과연 죽을 만큼 싫다는 심정으로 만든 축제의 결과물이 오죽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간혹 '붕어빵 축제'도 태어난다. 일손이 태부족한 경우 축제 기획사에 콘텐츠의 상당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전국 지역축제 콘텐츠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로도 지목된다.

지난 봄 한 지역축제 현장에서 만난 상황 또한 소비자의 바람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경우였다. 우리 차의 우수성과 다도의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 내방객에게 그 매력을 전하겠다는 축제의 개막식은 그야말로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사회자의 음성은 무슨 '명랑운동회' 중계처럼 우렁차고 빨랐으며, 은은해야 할 우리가락은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귀청을 따갑게 때리는 소음으로 변해 있었다. 설상가상 햇차를 우려낸 찻물이 수돗물 소독약 냄새에 눌려 온데간데없었으니….

이게 우리 지역 축제의 현주소일까 싶어 참으로 씁쓸했다. 해당 지자체로서는 축제감독을 선임하는 등 제법 큰 예산을 들였다는 축제의 현장이 그 모양이었다.

몰개성의 붕어빵 축제는 문체부에서 선정·지원하는 문화관광축제 선정방식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현행 문화관광축제는 다양한 축제 장르를 세분화 하지 않고 한데 뭉뚱그려 대표축제, 최우수축제, 우수축제 등을 선정하고 있다. 지역축제는 공연예술, 문화재활용, 미식, 자연경관, 특산품… 등 그 다양한 분야만큼이나 독창성도 제각각이다. 헌데 '축제'라는 큰 틀에 모두를 넣고 우열을 가리고 있으니 이는 공정한 매력성을 가리기에는 한계가 있는 방법이다. 일단 부문별 우열을 가린 후, 전체를 아우르는 선정방식이라면 더 합리적일 터다.

평가지표 또한 분야별로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동일한 평가지표에 모든 장르의 축제를 맞춰 순위를 매기려 드는 것은 무리다. 물론 문체부가 제시한 평가지표를 충실히 따르는 과정에서 지역축제들이 일정부분 질적 성장을 일구는 성과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지자체들이 과도하리만치 문화관광축제 선정을 위한 축제 만들기에 올인하는 모습들이다. 우려 되는 것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자칫 개성부족의 붕어빵 축제가 양산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 입장에서야 당장 목전에 닥친 미션, 성과내기도 급하겠으나 궁극적으로 축제소비자가 흡족해 하는 잔치, 이를 통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춰 나가는 게 더욱 중요하다.

우리 지역축제가 소비자의 니즈와 피드백 반영의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 주목할 만한 사례가 마침 우리 주변에도 있다. 예컨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자리한 경의선 숲길 공원 '연트럴파크'가 그런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 지역축제들이 눈여겨 볼 법한 성공의 키워드를 지니고 있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빗댄 '연트럴파크'는 매일 밤 젊은 내방객들로 생기가 넘쳐난다. 밤마다 공원과 그 주변 골목길에서는 삼삼오오 흥겨운 자생적 축제가 펼쳐진다.

연트럴파크는 수년 전 서울시가 경의선이 지하로 바뀐 뒤 남겨진 지상 공간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공원화한 경우다. 이후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카페와 술집, 소품숍 등이 늘어나며 20~30대 젊은이, 30~40대 직장인들 사이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예전의 연트럴파크 지역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철길 따라 오막살이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칙칙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불과 수년 사이 공원 개장과 함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이 공원의 잔디밭문화를 먼저 개척했고, 지역 상인들은 이에 테이크아웃 전문점 등 소비자 맞춤형 문화를 적극 제시했다. 이 같은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의 상호호응은 매일 밤 작은 자생적 소비자축제를 공원 곳곳에서 펼쳐내는 연트럴파크 활황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지역 축제가 주민과 내방객 모두를 흡족하게 하는 신나는 잔치마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교감형 축제가 그 해답이다. 매사가 그러하듯 사람이, 소비자가 먼저다. 축제 또한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바람을 담아내고 공감할 수 있는 축제가 진정 지속가능한 잔치로 발전해가는 것이다.

결국 축제의 기획도, 소비도 사람의 몫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잔치마당도, 세상도 바뀌는 법이다. 지역 축제의 공급자인 공무원, 지자체장들의 마인드가 적극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축제정책을 관장하는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은 대중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어루만져준 대표적 시인이다. 그 탁월한 감성을 대한민국 지역축제발전 정책에도 쏟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가을 진정 축제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고 담아내는 축제 만들기를 적극 독려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형우 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