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해봐. 네가 아직 쓸모있다는 걸…"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대모' 김혜수가 김고은에게 던진 대사다. 월급 받는 직장인들에게는 섬짓한 대사다. 성과주의 기치를 내건 경영주들이 가성비 떨어지는 고 연차 직원에게 던지고 싶을 법한 말. 과연 어떻게 '쓸모 있음'을 증명할까.
'공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조직을 위해 헌신했던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 자리를 빠르게 '미래 가치'가 채우고 있다. 야구 시장도 흡사하다. 올 겨울 준척급 FA에게 닥친 강력 한파도 '과거성과'보다 '미래가치'를 우선시 하는 기조 속에 탄생했다.
계약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원인은 물론 '보상 조건'이란 족쇄다. 타 팀 이적은 언감생심이다. '수요 경쟁'이 원천 배제된 상황. 완벽한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의 재편이다. '거품'이 낄 여지가 없다.
마음을 비우고 소속팀에 잔류하려 해도 이 또한 쉽지 않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보다 짧은 기간, 생각보다 적은 돈을 제시 받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선수의 자신감과 구단의 판단 간에는 갭이 크다. 구단은 냉철하게 '얼마의 기간 동안 얼마나 할 수 있을까'를 계산한다. 이 기대치의 수치화가 바로 제시 기간과 제시 금액이다. 해를 거듭할 수록 하향세를 피하기 힘든 노장일 수록 충격적인 푸대접을 피하기 어렵다.
갈수록 발달하는 선수 평가 툴도 영향을 미친다. 주먹구구의 시대가 저문 지 오래다. 연봉 재계약 툴인 고과평가 시스템은 거의 완벽하게 활용되고 있다. 연봉은 '과거 활약'에 대한 평가라 '고과'를 통한 수치화가 가능하다. 협상을 통해 조정할 여지가 거의 없다. 빠르게 합의하고, 심지어 '백지위임'까지 나오는 이유다.
'미래'를 가늠해야 하는 FA 계약 규모 산출 과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하지만 이 역시 '통계수치'와 분석 툴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다만 여러 가지 변수 통제가 어렵다보니 양측의 시각 차가 생긴다. 선수 측 협상을 담당하는 에이전트들도 보다 더 정교하게 수치화된 자료를 통해 고객의 '미래가치'를 입증 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FA한파가 올해만 반짝하고 말 이상 기후가 아니란 점이다. 변화가 없다면 'FA등급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매년 겨울마다 반복될 공산이 크다.
한 프로구단 관계자는 "예전에는 과거 팀 공헌에 대한 판단이나 막연한 기대감 등이 FA 계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금은 분석을 통해 '미래 가치'를 본다. 선수와 대면협상이 아닌 에이전트와의 대리계약이란 점도 온정주의를 배제한 계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