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을 울린 사람. 무릎부상을 절룩이던 전광인도, 노익장을 과시한 여오현 코치도, 허리부상을 딛고 맹활약한 파다르도 아니었다. 세터 이승원의 얘기에 최 감독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최 감독은 26일 천안에서 열린 2018~2019시즌 도드람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 3차전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한 뒤 취재진과의 기자회견에서 방송 인터뷰 도중 울었던 이유를 묻자 "(이)승원이가 올해 힘들었다. 부상도 많았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었는데 마지막에 잘해주는 것을 보면서 그런 것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고 시즌 때 충실히 연습한 게 챔프전에서 나왔다. 시즌 땐 실력이 나오려고 하면 부상당하고 해서 안타까웠다.내 마음속의 MVP는 이승원과 여오현 코치다"라고 했다.
주전세터 노재욱이 빠지면서 현대캐피탈은 걱정속에 시즌을 맞았다. 이승원이 주전 세터로 좋은 공격수들에게 잘 배급을 해야하는데 기복이 있었다. 이번 챔프전을 앞두고 최고의 세터로 불리는 대한항공 한선수와의 대결이라 세터싸움에서 대한항공이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승원은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승원은 "홀가분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나 뿐만아니라 선수들 모두 간절했던 것 같다"는 이승원은 "개인적으로는 2년 전 우승했을 때보다 이번이 더 좋았다"라고 했다.
최 감독이 울었다는 얘기를 하자 이승원도 "영상을 봤다"고 했다. "감독님께서 나를 안아주시면서 그말씀을 하셨다. 영상으로 감독님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이승원은 "올시즌 기억이 났고, 나 때문에 감독님과 동료 선수들이 많이 걱정했었다. 좋은 결과로 시즌을 마칠 수 있게됐다. 정말 홀가분하다"고 했다.
시즌 내내 최 감독의 질타를 받았던 이승원은 "솔직히 신경이 쓰였고, 힘들기도 했지만 우승하면서 서운함은 다 사라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6라운드부터는 최 감독이 이승원에게 지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승원 자신은 오히려 그게 더 불안했다고. "질타를 하시고 그래야 오히려 마음이 편한데 안하시니까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하고 더 불안해 지더라"며 "감독님께서 내 성격을 파악해서 큰 경기를 앞두고 아무말씀을 안하신 것 같다"고 했다.
최 감독은 "플레이오프 2차전 때 허수봉이 잘해줘 분위기가 올랐고 그것이 계속 유지되면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했다. 허수봉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게 바로 이승원의 토스였다. PO 2차전 1세트 위기(22-23, 23-24) 때 허수봉에게 연속해서 공 올려준 이유를 묻자 "상대 블로킹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승원은 "당시 전위에 전광인 선배가 있었는데 아가메즈도 전위에 있어서 블로킹을 의식했다. 그래서 (22-23에서 후위에 있는) 허수봉에게 줬는데, 다행히 허수봉이 잘 때려서 나도 살았다"며 "사실 올리면서 부담 많이 느꼈다. 수봉이는 스코어를 보고 있지 않아서 마음 편했다고 하는데, 나는 점수를 알고 있어서 더 부담스러웠다. 감독님께서 '나와 승원이가 반대로 생각했다'고 하신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했다.
백업멤버가 아닌 주전으로 팀 우승을 함께한 이승원에게 이번 챔프전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승원은 "챔프전이 내 배구 인생의 터닝포인트다"라면서 "더 배우고 노력해서 이 분위기를 유지하는 선수가 되겠다"라고 힘차게 말했다. 천안=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