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대기심이 무슨 죄입니까."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관중 항의소동 후유증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14일 춘천송암스포츠타운에서 열린 강원과 FC서울의 K리그1 7라운드 때문이다. 이날 경기 후 일부 강원팬들이 심판 판정에 거칠게 항의했다.
연맹은 사후 심판평가위원회를 통해 페시치의 득점 상황을 오프사이드로 판단하고 해당 심판에 대해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와 별도로 관중 소요사태에 대해서도 홈 구단이 경기장 안전과 질서유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제재금 500만원도 부과했다.
징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흥분한 강원팬들의 소동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심판의 승용차가 크게 파손됐다. 누군가 발로 차고 손으로 흔드는 바람에 앞 범퍼가 깨졌다.
하필 파손된 승용차의 주인은 이날 경기 판정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대기심이었다. 경기 관계자 주차장에서 차를 빼 나오려다가 애꿎게 봉변을 당한 것이다.
피해자 대기심은 구제받을 길도 막막하다. 연맹이 심판들을 대상으로 단체 상해보험을 가입하고 있지만 자동차 파손은 보상 대상이 아니다. 범퍼를 파손시킨 가해자 또는 홈 구단측이 변상하지 않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자기 부담으로 해결해야 한다.
소요 장면이 찍힌 차량 블랙박스 영상과 주변 목격자들을 확인하면 용의자의 인상착의까지는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강원 구단이 용의자 확인을 위해 협조할지, 용의자가 잘못을 순순히 시인할지는 미지수다.
연맹이 이같은 사실을 강원 구단에 통보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강원 구단은 경기장 안정유지 소홀로 인해 내려진 제재금 징계에 대해 재심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을 연맹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에 내려진 징계도 '억울해서 수용못하겠다'는 판국에 팬이 저지른 자동차 파손까지 변상해주겠다고 나설 리 만무한 상황이다.
연맹은 "관련 규정이나 과거 사례로 볼 때 홈 구단 측이 대기심의 승용차 파손을 변상해주는 게 맞지만 이를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다"면서 "피해 심판과 상의해 고소·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K리그에서 관중 소동이 자주 발생했지만 심판이 직접 피해를 본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나마 홈 구단의 책임 수용으로 마무리됐다. 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15년 전 부천 SK(현 제주유나이티드)의 홈경기가 끝났을 때 관중 난동으로 심판 차량이 파손된 적이 있다. 이 때 SK 구단은 가해 관중을 대신해 자동차 수리비를 변상했다.
지난 2006년 7월 19일 수원 삼성과 광주 상무의 경기가 끝난 뒤에는 수원 팬이 던진 물병에 퇴장하던 심판이 얼굴을 맞아 광대뼈 골절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 이 역시 수원 구단이 치료비 모두를 부담했다. 해당 팬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지만 여론이 무서워서 그렇게는 못한다.
수원 관계자는 "연맹의 관련 규정에도 홈 구단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회요강 '제39조(경기장 안전과 질서유지)'에는 '관중의 소요, 난동으로 인해 경기 진행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선수, 심판, 코칭스태프 및 팀 스태프, 미디어를 비롯한 관중의 안전과 경기장 질서유지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관련 클럽이 사유를 불문하고 그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부담한다(6항)'는 조항이 있다.
연맹이 억울한 대기심의 구제를 위해 고발하거나, 강원 구단의 재심 신청을 접수할 경우 '연맹과 강원의 갈등 2라운드'로 번질 우려도 있다. 강원 구단은 지난해 수뇌부의 '비위 의혹'에 대한 연맹의 징계 등을 둘러싸고 연맹과 극심하게 대립한 바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흥분한 관중의 어느 정도 과격 행위는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게 우리 서포터 문화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애꿎은 사람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정서도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